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쳐보면 그 전체적인 분위기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습니다. 즉, 이들이 예수님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배우려고 하는가 아니면 그저 그러는 척을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저마다 전문 분야가 있듯이 사제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생겨나는 셈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이들은 그 절실함이 대단합니다.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우리 삶 안에 그분이 마련하신 섭리를 이미 알고 그에 따라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는 그 어떤 가르침이라도 목마른 이에게 생수를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물을 마시고 감사하지요.
하지만 그저 겉치레로 배우려는 이들은 금세 표가 납니다. 그들은 배울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억지로 와서 앉아 있는 것이지요. 물론 그들도 입으로는 ‘배우고 싶다, 정말 배우고 싶다’라고 주문을 외듯 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르쳐보면 이들은 배우려는 게 아니라 ‘분석’하고 ‘비판’하려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그 자리에 영혼 없이 몸만 와 있는 것이지요.
우리 옛 말에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듯이, 의미없는 가르침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르침이라는 것은 일순간에 일어나는 작업은 아닙니다. 꾸준히 돌을 깎는 마음으로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들 가운데에서도 깨닫는 이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예수님에 대해서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이들은 그 절실함이 대단합니다.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굳건히 믿고 우리 삶 안에 그분이 마련하신 섭리를 이미 알고 그에 따라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는 그 어떤 가르침이라도 목마른 이에게 생수를 내미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물을 마시고 감사하지요.
하지만 그저 겉치레로 배우려는 이들은 금세 표가 납니다. 그들은 배울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억지로 와서 앉아 있는 것이지요. 물론 그들도 입으로는 ‘배우고 싶다, 정말 배우고 싶다’라고 주문을 외듯 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가르쳐보면 이들은 배우려는 게 아니라 ‘분석’하고 ‘비판’하려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그 자리에 영혼 없이 몸만 와 있는 것이지요.
우리 옛 말에 소 귀에 경 읽기라는 말이 있듯이, 의미없는 가르침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가르침이라는 것은 일순간에 일어나는 작업은 아닙니다. 꾸준히 돌을 깎는 마음으로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들 가운데에서도 깨닫는 이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