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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이들의 부르짖음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루카 18,7)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은 그들의 선함으로 인해서 선택 받습니다. 그들 안에는 악의 씨앗이 없습니다. 선이 가득하고 그리고 인간적인 약점들이 있지요. 약점으로 인해 쓰러지기는 할지언정 악한 마음은 없습니다.

선택된 이들은 이미 세상의 본질에 대한 파악을 한 상태입니다. 이 세상이 찰나적인 것이며 이후에 다가올 영원한 것을 기다리는 이들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합니다. 자신 안의 약점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세상 안에서 시련과 고난을 겪는 것이 보통입니다.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에 이 영악한 세상에서 겪게 되는 고통들이지요. 마치 반 전체 아이들이 컨닝을 하는데 혼자서 우직하게 배운 것을 적어 내려가는 정직한 학생과 같다고나 할까요.

선택된 이들은 결국 기댈 곳이 하느님 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늘 부르짖지요. 그러면 하느님은 그 즉시 ‘판결’을 내려 주십니다. 기실 판결은 이미 나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실행은 좀 더 미루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선택된 이들은 왜 그런지 이해합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느님과 그분의 지혜를 굳게 믿기에 하느님께 부르짖고, 그분이 들어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그리고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거기에도 당신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의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자기들 스스로를 선택된 이들의 자리에 함부로 놓아두곤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토록 부르짖는데 왜 응답이 없느냐고 투덜거리면서 저 위의 성경구절에서 하는 말을 믿지 못하지요. 문제는 그렇게 투덜거리는 이들은 전혀 선택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선택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로 자신의 욕구만 가득한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자들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분명히 듣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택된 이들을 훗날 반드시 골라내어 당신의 나라에 들이실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된 이들이 당하는 의로운 고통은 그 가치가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하지만 악한 이들, 하늘나라를 힘으로 빼앗으려는 이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이들이라 자처하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미 듣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이미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느님은 숨어 있는 것도 보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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