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감사’입니다. 우리는 ‘받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받았느냐에 따라 더 감사할수도 덜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주일에 성당에 와서 주보를 받았다고 감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적어도 아는 지인으로부터 포장지에 곱게 싸인 좋은 양서를 선물 받으면 감사하게 되지요.
이제는 나병환자와 우리의 상관관계입니다.
나병은 사람을 세상에서 분리시킵니다. 그 흉한 외모와 전염성 때문에 분리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지요.
우리의 죄악도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의 직분에서 분리시켜 버립니다. 그 흉한 죄악을 안고서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없지요.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순간에 그들의 병을 낫게 했지요.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나서 살아가게 했지요.
하지만 단 한 명의 환자만이 감사를 드리러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을 듣지요.
이제 남은 건 우리들 차례입니다. 우리는 과연 그 선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돌아와서 감사드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도 여러가지 원하는 것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우리끼리 좋아서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받기나 했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 받기는 커녕 도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감사가 그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받지 못한 사람, 아니면 받아서 내팽개쳐버리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나병환자와 우리의 상관관계입니다.
나병은 사람을 세상에서 분리시킵니다. 그 흉한 외모와 전염성 때문에 분리되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지요.
우리의 죄악도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의 직분에서 분리시켜 버립니다. 그 흉한 죄악을 안고서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없지요.
예수님은 나병환자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순간에 그들의 병을 낫게 했지요.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나서 살아가게 했지요.
하지만 단 한 명의 환자만이 감사를 드리러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선언을 듣지요.
이제 남은 건 우리들 차례입니다. 우리는 과연 그 선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돌아와서 감사드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도 여러가지 원하는 것이 더 많을까요? 아니면 우리끼리 좋아서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받기나 했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 받기는 커녕 도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감사가 그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은 받지 못한 사람, 아니면 받아서 내팽개쳐버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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