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라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타깝게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들이 스스로를 하느님의 자녀라고 여기는 근거는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입양 행위’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사실 그런 외적 근거보다도 내적 근거를 더욱 소중히 하신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지요.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계약이 아닌가? 나는 그 계약을 따라 이행했으니 나는 하느님의 자녀이어야 하고 하느님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식의 갑을논리입니다. 정신나간 이들이지요. 이들은 자신들의 계약행위는 강조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계약을 위반하는 위법자들의 무리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근본 계약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은 채로, 단순히 외적인 규정을 준수한 것(세례를 받고, 제때 판공 규정을 준수하고, 주일미사에 나오고 교무금을 내는 것들)을 두고는 스스로를 당신의 자녀될 자격이 있다고, 그래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우겨댑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는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수탈당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훗날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이 모든 것을 정돈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입으로만 신앙생활을 해 온 자들이 할 말이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면 그 때의 심판의 기준은,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이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우리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자라야 하늘 나라에 합당한 자일 것입니다. 성무일도를 아무리 열심히 바치고, 평일미사를 얼마나 나가는가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부차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정치적 현안에 분노하고 세상의 모든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바로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면 그는 위선자일 뿐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계약이 아닌가? 나는 그 계약을 따라 이행했으니 나는 하느님의 자녀이어야 하고 하느님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는 식의 갑을논리입니다. 정신나간 이들이지요. 이들은 자신들의 계약행위는 강조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계약을 위반하는 위법자들의 무리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근본 계약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도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은 채로, 단순히 외적인 규정을 준수한 것(세례를 받고, 제때 판공 규정을 준수하고, 주일미사에 나오고 교무금을 내는 것들)을 두고는 스스로를 당신의 자녀될 자격이 있다고, 그래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고 우겨댑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는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수탈당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훗날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이 모든 것을 정돈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입으로만 신앙생활을 해 온 자들이 할 말이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면 그 때의 심판의 기준은,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이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고 우리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자라야 하늘 나라에 합당한 자일 것입니다. 성무일도를 아무리 열심히 바치고, 평일미사를 얼마나 나가는가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부차적인 방법일 뿐입니다. 정치적 현안에 분노하고 세상의 모든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작 바로 옆에 있는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면 그는 위선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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