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안락’을 추구한다면 어찌 될까요?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냥 문을 꼭 닫아걸고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만 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안락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평판을 신경쓴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국에서는 도대체 그 선교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낼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교지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한국에는 ‘알려진 것만 알려지는’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것들은 꽁꽁 숨겨지게 되지요. 선교사는 가장 가난한 지역에 가서 사진 몇 장을 찍어서 한국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으로 보여 주면서 조금 우는 소리를 하면 얼마든지 재정적인 지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교 하러고 온 이들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 싫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수단으로 물질적인 것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핵심이 되어 버리고 나면 선교사는 그 정해진 일들 속에서 안락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원래 선교는 ‘불편한’ 것입니다. 선교는 거북하고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박해를 받고 심지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 선하고 순박한 이들의 사랑도 존재합니다. 언제나 양측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도 미리미리 경고해 두신 것처럼 선교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그런 풍파 가운데에서 주님의 평화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곤히 주무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내적 평화를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외적인 평화와 안락을 추구하면서 도리어 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들이 있으니 걱정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한다면 도대체 왜 선교사가 되겠다는 것일까요? 선교지에 자기 마음에 드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선교 하러고 온 이들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받아 들이기 싫어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수단으로 물질적인 것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핵심이 되어 버리고 나면 선교사는 그 정해진 일들 속에서 안락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원래 선교는 ‘불편한’ 것입니다. 선교는 거북하고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박해를 받고 심지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면에 선하고 순박한 이들의 사랑도 존재합니다. 언제나 양측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도 미리미리 경고해 두신 것처럼 선교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그런 풍파 가운데에서 주님의 평화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곤히 주무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내적 평화를 간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외적인 평화와 안락을 추구하면서 도리어 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이들이 있으니 걱정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한다면 도대체 왜 선교사가 되겠다는 것일까요? 선교지에 자기 마음에 드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