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묻습니다. ‘뭘 해야 합니까?’ 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묻는 사람은 좀처럼 없습니다. ‘이걸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말이지요. 한 마디로 그냥 뭐든 당신이 좀 알아서 해 달라는 거지 내가 뭘 해보겠다는 의지 자체가 부족한 것이지요. 그게 아니면 아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모르고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그렇게 모를까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걸 하기는 싫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기 싫은 마음은 교묘히 숨기고는 마치 자신이 순수한 어린 아이인 양 아무것도 모른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해야 하느냐구요? 당신이 하면 안된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하지 말고,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미워해도 되나요? 당연히 안되겠지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하나요?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자꾸 복잡하게 만들지요. 이런 이런 케이스에도 미워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 이런 이런 케이스에도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요?
한편 안타깝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복잡 다단해진 세상에서 살려다보니 내면을 분별하는 기준들도 점점 더 복잡 다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는 어떻게 되는건지, 인터넷 음란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전쟁을 지원하는 악덕 기업들의 물건들은 사야 하는건지 말아야 하는건지…
물론 교회는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찾을 것이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영역에서 ‘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찾고 그것을 궁금해 하는 것이지요. 이런 질문들을 해 보는 것입니다. ‘아빠와의 관계가 좀 소원한데 그것을 더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동생이 시험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그 아이가 미소짓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 이런 구체적이고 선에로의 방향이 뚜렷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방법을 찾고 하나씩 이루어가다보면 어느샌가 우리들에게 지혜가 생기고 우리가 ‘지식적’으로만 추구해 오던 질문들에 답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곁에서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하는 아내의 청을 뿌리치고 동성애 커플이 교회 안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사제가 교회가 정한 독신제가 정당한가 아닌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신자들의 영적 목마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아마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아서 그런 제도에 전혀 개의치 않고도 아주 기쁘고 행복하게 생활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뜸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 말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을 찾고 그 안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모르고 있을까요? 우리가 정말 그렇게 모를까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걸 하기는 싫고 다른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기 싫은 마음은 교묘히 숨기고는 마치 자신이 순수한 어린 아이인 양 아무것도 모른다는 시늉을 하는 것이지요.
무엇을 해야 하느냐구요? 당신이 하면 안된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하지 말고,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미워해도 되나요? 당연히 안되겠지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하나요?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자꾸 복잡하게 만들지요. 이런 이런 케이스에도 미워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 이런 이런 케이스에도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요?
한편 안타깝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복잡 다단해진 세상에서 살려다보니 내면을 분별하는 기준들도 점점 더 복잡 다단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는 어떻게 되는건지, 인터넷 음란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전쟁을 지원하는 악덕 기업들의 물건들은 사야 하는건지 말아야 하는건지…
물론 교회는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찾을 것이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영역에서 ‘사랑을 실천할 방법’을 찾고 그것을 궁금해 하는 것이지요. 이런 질문들을 해 보는 것입니다. ‘아빠와의 관계가 좀 소원한데 그것을 더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동생이 시험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그 아이가 미소짓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즉 이런 구체적이고 선에로의 방향이 뚜렷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방법을 찾고 하나씩 이루어가다보면 어느샌가 우리들에게 지혜가 생기고 우리가 ‘지식적’으로만 추구해 오던 질문들에 답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 곁에서 손을 내밀고 도움을 청하는 아내의 청을 뿌리치고 동성애 커플이 교회 안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느 사제가 교회가 정한 독신제가 정당한가 아닌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신자들의 영적 목마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면 아마 하느님의 은총을 듬뿍 받아서 그런 제도에 전혀 개의치 않고도 아주 기쁘고 행복하게 생활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뜸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 말고,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을 찾고 그 안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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