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중략) “복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로마 10,17-18, 21)
믿기 위해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듣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믿음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 즉 세상 사람이 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사람에게 믿음은 생겨나기 힘든 법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인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개도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그 말을 이해하고 내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소 귀에는 경을 읽지 않는 법입니다.
복음화를 한답시고 아무에게나 다가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미친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습니다. 분별없는 선교활동이 수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유입니다. 먼저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나아가 그가 들을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길거리 선교는 가능한 일이지만 무작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은 분별없는 일에 불과합니다. 선교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모든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간단히 정돈해 봅시다.
말함 - 들음 - 믿음
이것이 가장 기초적인 구도입니다. 그러나 이 기초적인 것이 다음의 복잡성으로 이어집니다.
말함 - 소리만 들음 - 불신
엉뚱한 곳에 말함 - 듣지 않음 - 종교적인 거부감
말하지 않음 - 듣지 못함 - 불신
길바닥에 뿌려진 씨, 돌밭에 뿌려진 씨,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와 같은 것은 듣는 이의 다양한 태도와 자세에 대해서도 설명을 합니다. 정말 간단하고 소박한 믿음의 구도가 참으로 복잡 다양해지는 것이지요.
말씀은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말해야 하고, 말하기 위해서 듣는 이를 올바로 선별해야 하고, 또 필요하다면 잘 듣게 하기 위해서 준비 작업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극적으로 말하지 않는 사람, 막무가내로 말하는 사람,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 등등이 모든 일을 복잡 다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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