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공동체에서 무슨 운동을 시작할 때에는 그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기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을 굳이 운동을 만들어서 강조할 필요는 없지요.
최근 교황님께서 ‘자비’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 말인즉슨 그만큼 교회 안에서 ‘자비’가 부족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교회 안에는 이런 저런 부족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완전한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지요. 교회는 시작부터 약점이 존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하는 점도 늘 존재했지요. 첫번째 공의회가 소집된 이유 역시도 교회의 일종의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유대 율법을 적용 시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로 약간의 중재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방향은 동일하지만 구체적인 실천에서는 여러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문화를 살아가고 다른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신앙을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는 데에 있어서 ‘이미 종결된 문제’라는 것은 없는 셈입니다. 우리는 매번 다시 스스로를 점검하고 좋은 것은 살리고 부족한 것은 채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교황님의 강조점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교회에는 자비가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냉정한 법규가 판을 쳤지요. 예수님은 충분히 자비를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약점은 다시 법을 규정하고 그것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법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법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로 지켜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법의 근본은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법의 테두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단단해지면서 사람을 점점 더 숨막히게 해 온 셈입니다.
교황님은 이 울타리를 부수고 다시 사랑이 숨쉬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선까지 다시 숨을 쉬게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조여오는 울타리 때문에 숨막혀 하던 적지 않은 이들의 숨통이 다시 트이게 되리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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