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분의 적대자들은 모두 망신을 당하였다. 그러나 군중은 모두 그분께서 하신 그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루카 13,17)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헌데 그것을 듣는 사람은 양편으로 나뉩니다. 한 측은 기뻐하고 다른 한 측은 부끄러워합니다. 말씀은 같은데 그것을 기준으로 양측의 사람이 나뉘는 셈이지요.
예컨대 제가 강론대에서 단골 메뉴로 하는 말인 ‘술을 과하게 먹지 마라’라고 하면 언제나 두 부류의 사람이 나뉩니다. 한 측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는 아내와 자녀들이고, 다른 한 측은 그 말을 듣고 수치스러워하는 남편들입니다.
진리가 다가올 때의 전형적인 두 반응인 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참되게 만날 때에 우리의 내면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참된 것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기뻐하고 우리의 거짓된 것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당황하고 거북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껍데기로 예수님을 만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 안에서 언제나 이 두 가지 반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에 더욱 몸담고 있는가에 따라서 반응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것의 비중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전반적인 반응이 이미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반기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는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예수님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종교생활에 몸담고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예수님이 진정 마음을 파고들려고 할 때면 모두 손을 놓고 도망가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직접 다가오지 않고 멀찍이서 머무를 때에는 언제라도 환영이지만 조금이라도 다가올 기색이 보이면 당장에라도 신앙생활을 내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위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취미처럼 하고 있는 이들이지요. 주일 미사는 꼬박꼬박 나가지만 언제라도 주일미사보다 더 흥미를 끄는 활동이 있거나 자신의 현세 생활과 관련된 활동이 있으면 주일미사 따위는 너무나도 우습게 내던져 버리곤 하는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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