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하느님은 무슨 열매를 바라고 계실까요? 어떤 것을 두고 당신의 열매라고 하실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과 사랑과 의로움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 영혼을 꽉 채우고 넘쳐 흐를 때에 우리는 잘 익은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 열매라는 것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참으로 선하게 되고 사랑과 의로움에 가득차게 되는 것은 적지않은 훈련 과정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사도들을 부르셨고 당신의 모범을 통해서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 후에 일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그 일을 교회가 계속 물려받아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교황님은 형제 사도단, 즉 주교단과 더불어 세상 모든 곳에 당신의 권한을 나눈 사제들을 파견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이루어 가꾸고 보살피라고 하지요. 그래서 사제들은 본당 공동체를 형성해서 열심히 사목을 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론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분열, 중상, 음모, 다툼과 같은 것들입니다. 한 공동체를 정말 하나의 머리,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하나의 심장, 성령 안에서 모아 이끌고 나아가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포도 재배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린다는 것을 말이지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걸 아는 포도 재배인은 간절히 부탁합니다. 올해만 더 두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솔직히 포도 재배인도 언제 열매가 열리게 될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열매가 열린다는 것은 뭔가 기계적인 수순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장 온전한 환경을 준비할 따름입니다. 언제라도 자기가 원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말이지요. 그래서 무화과나무로서는 더이상의 변명의 여지가 없는 셈입니다.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면 둘 중에 하나의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열매가 열려 주인이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거나, 아니면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자르거나 하는 일이지요.
아, 잊지 마십시오. 포도나무가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입니다. 포도밭에 있을 자격도 없는 것을 주인의 자비로움으로 심어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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