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집니다. 스스로의 길을 결정할 기회가 주어지지요. 그 길을 선택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입니다. 하느님은 시초부터 우리 각자의 운명을 정해 두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정해 두신 것은 큰 길입니다. ‘상선벌악’이라는 길이지요. 그 뿐입니다. 거기에 동참하느냐 마느냐, 즉 우리가 선을 행해서 상을 받느냐, 악을 저질러서 벌을 받느냐 하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선택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억눌렀다고 핑계댈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러하였다면 우리는 죄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할수록 그런 핑계거리가 늘어납니다. 죄짓는 것도 유전자 때문이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 그건 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각자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죽음의 문턱에 갔다온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영화처럼 펼쳐졌다는 고백을 하곤 합니다. 그 모든 순간을 통해서 스스로의 양심을 성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는 모든 어둠의 행위들은 절대로 외부에서 억지로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내부의 동의 하에 저질러지는 일들입니다.
때로 지식이 가득찬 이들은 이런 저런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 내어서 ‘그럼 이런 경우에는 어떠하냐? 저런 경우에는 어떠하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특수한 경우들을 다 제쳐두고 그 질문을 하는 이에게 직접적으로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하고 말이지요.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말이 많습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한시라도 더 사람들을 깨우쳐야 하고 사람들과 살아야 하고 그들과 어울려서 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헌데 사랑이 없는 마음이 차가운 이들은 자신의 차가운 이성을 써서 이런 저런 올무를 엮어 보려고 하는 것이지요.
드높은 지성의 탑이 우리를 천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면 세상의 모든 지성인들은 이미 천국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우리를 하늘 나라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우리를 천국으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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