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
- 예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 살아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믿는 이들에게는 그분의 영혼 뿐만 아니라 육신까지도 실제로 살아 생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해 낼 길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간혹 성체의 기적이 일어나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접하는 이가 ‘이건 거짓말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끝인 거지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것은 그분의 육적인 면이 지금에 와서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살아 있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 살아있는 예수님을 볼 때에는 다름 아닌 그분의 ‘영’을 지닌 이를 만날때입니다. 그분의 영, 즉 살아있는 성령을 마주할 때이지요.
예수님의 영을 지닌 이를 여러분이 실제로 만나게 된다면 거의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영은 ‘지혜’를 지니고 있고 이 지혜는 사람들이 그 영을 지닌 이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사회사업을 열심히 하면 그분의 영을 지닌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무턱대고 돈을 쥐어 준다고 예수님의 영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에게 돈을 주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과연 예수님의 영, ‘성령’을 지닌 이는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을까요?
허무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뚜렷한 징표는 없습니다. 보다 명확하게 말해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은 같은 영을 지닌 사람들 뿐입니다.
미술 선생이 잘 만든 음악을 분별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인간의 감각에 의지하는 이가 영적으로 예수님을 닮은 이를 분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음악은 오직 음악을 배운 이들이 분별해 낼 수 있을 뿐이지요.
예수님이 살아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이들에게는 증명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반면 세속의 자녀들에게는 반드시 증명해 내어야 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그들은 증명이 되기 전에는 믿지 않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증명될 수 없는 분을 증명하라고, 아니, 자신들의 기준으로 증명될 수 없는 분을 증명하라고 우기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지요.
가진 자는 더 가져 부유하게 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마저도 그들에게는 ‘돈’과 관련된 비유로밖에는 들리지 않지요.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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