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루카 14,8)
신학생 시절 이 복음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랫자리에 일부러 앉아서 윗자리로 올라간다면 그 역시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아랫자리로 스스로 내려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복음의 신비를 알아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을 ‘이성적으로만’ 생각해서 마치 스스로 성인이라도 된 상태처럼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성인이니 모든 것은 일단 기본적으로 다 가능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소박하게 제시하는 진리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도 좋으니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간단한 예로, 성당 뒷자리를 좋아하는 이들은 성당 앞자리에 한 번 앉아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기도손을 하고 미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고리타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그렇게 해 보면 미사 중에 기도손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신자를 비롯한 비신자 사람들이 여럿 모인 자리에서 식사 전에 성호를 크게 긋는 것은 그들로부터 눈총을 받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의욕을 잃고 말지요. 하지만 바로 거기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낮은자리인 셈입니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자리, 그 누구도 쉽게 앉지 않으려고 하는 낮은자리인 셈이지요. 반면 신앙인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대표로 나서서 식사기도를 주관하는 것은 전혀 낮은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높은 자리이고 명예로운 자리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사실 낮은 자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아는 자리입니다. 바로 내가 가기 꺼려하는 자리가 낮은 자리인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의식적으로 낮은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훗날 하느님께서 우리를 높은 자리에 앉혀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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