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동기가 주어질 때에 움직입니다. 동기가 없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을 먹지 않고, 돈을 벌고 싶지 않은데 일을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무언가 동기가 주어지기 때문에 일을 하는 거지요.
기본적인 욕구에 의한 것은 제외하도록 합시다. 쉽게 말해서 동물이라도 다 하는 일들은 제외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인간에게는 남은 두 가지 동기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능동적인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수동적인 동기입니다.
자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셈이니까요. 반대로 떠밀려서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밀려서 하니까요.
달리 표현하면 ‘사랑’인가 ‘두려움’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나의 자발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닥치기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외로 상당수의 일들이 우리의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일들입니다.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일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불행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하는 일, 자발적으로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동기에 의해서 일을 하고 그 일로 다시 자양분을 얻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수동적인 것이고 두려움에 의한 것일 때에 한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게 되지요. 마치 커다란 기계의 부속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람도 없고 기쁨도 없지요. 반대로 우리의 일이 사랑에 의한 것이면 그는 일의 비중의 크기와 상관없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의 동기를 올바로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하루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 이웃에게 미소 한 번이라도 지어줄 수 있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욕구에 의한 것은 제외하도록 합시다. 쉽게 말해서 동물이라도 다 하는 일들은 제외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인간에게는 남은 두 가지 동기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능동적인 동기이고, 다른 하나는 수동적인 동기입니다.
자기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셈이니까요. 반대로 떠밀려서 일을 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그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밀려서 하니까요.
달리 표현하면 ‘사랑’인가 ‘두려움’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나의 자발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닥치기 때문에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외로 상당수의 일들이 우리의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일들입니다.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하는 일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늘 불행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하는 일, 자발적으로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 굉장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동기에 의해서 일을 하고 그 일로 다시 자양분을 얻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수동적인 것이고 두려움에 의한 것일 때에 한 인간은 ‘공허함’을 느끼게 되지요. 마치 커다란 기계의 부속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람도 없고 기쁨도 없지요. 반대로 우리의 일이 사랑에 의한 것이면 그는 일의 비중의 크기와 상관없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의 동기를 올바로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하루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가득 담아 이웃에게 미소 한 번이라도 지어줄 수 있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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