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마르 10,24)
하느님의 나라에 가는 것이 쉽다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헌데 왜 우리는 모두 그것이 별 것 아닌 일인 양 별다른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걸까요?
정말 주일미사나 빠지지 않으면 자동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뭘 더해야 하느냐구요?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나요?
간단합니다. 어느 대학이든 입시 요강이 있고 그것을 충실히 채우면 그 대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준비된 과제를 하면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나라의 입시 요강을 살펴봅시다.
기본 10계명의 준수입니다. 헌데 이 기본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습니다. 내가 언제 사람을 죽였느냐구요? 그렇지요. 당신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살인의 시작은 ‘증오’에 있습니다. 예수님부터 말씀하셨지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 중요한 것은 증오하지 않는 것이라구요. 아니 당장 1계명부터 살펴봅시다. 우리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라는 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나요? 아니면 우리는 세상을 섬기고 그 가운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나요?
우리는 마치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데 수능을 제쳐두고 논술부터 준비하려는 이들과 비슷합니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고 기초부터 단단히 챙겨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법을 준수하라는 게 아니라 법의 근본에 있는 것을 챙겨야 하지요. 모든 법의 근본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의아해 합니다. ‘아니, 그게 전부이고 또 가장 힘든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전부이자 가장 힘든 일입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등급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이해를 돕겠습니다.
날마다 술을 퍼마시고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에게 하늘나라에 들어서는 길은 먼저 술을 줄이는 일입니다. 먼저 그 첫 단계를 수행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에게로 나아가고 싶은 열정 안에서 자신의 삶을 뉘우치고 술을 줄이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의 현실은 여전히 한달의 대부분을 술에 취해서 살겠지만 하느님은 그의 변하려는 노력을 높게 평가하실 것입니다.
반대로 술은 입에 댈 줄도 모르고 아내를 때린다는 것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는 남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본당에서 훌륭한 모범 신자로 평가받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교만’이 싹트고 있고 사람들의 찬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의 삶은 흠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하느님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걷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마침내 마지막 시간이 이르렀을 때에 그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낮은 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매순간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에 우리가 이미 넘어설 선에 도달해서 그때부터는 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영원한 안식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힘든 이유는 ‘꾸준한 회개’, 즉 ‘자기를 버림’ 때문이고 나날이 이루어야 하는 ‘정진’ 달리 말하면 ‘십자가를 짐’ 때문입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완성단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부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는 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남보다 낫다는 생각, 남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배우지 못하게 합니다. 그들은 비록 더 나은 교육과 생활환경 속에서 마치 자신들이 도덕적, 윤리적으로도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정반대가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자신의 힘든 상황 속에서 하느님께 열렬히 부르짖었던 반면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돈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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