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저는 저의 아이들이 냉담중인데 아직 견진도 하지 못했는데 왜? 엄마 종교를 강조 하냐고 묻습니다. 딸아인 기독교가 더 좋은데 왜? 천주교냐고 물으며 엄마 종교를 강요 하냐고 묻습니다. 그럴 때 아직 넌 모르지만 성당이 참 좋은 거라고 막연히 얘기합니다. 참 잘살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걱정이 많이 앞섭니다. 어떻게 우리 애들을 이끌어야할지? 외인인 남편은 한 번 더 종교의 자유를 주라고 하니 참 걱정이 됩니다. (허근우)
종교는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내재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거부한다고 거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차이를 올바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초월적인 것을 향한 방향성을 말합니다. 물론 이마저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교 껍데기를 지녔다고 신앙을 지닌 것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진지하게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이 근본적인 방향성을 검토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진지성이 있어야 어떤 종류의 종교에 참여하든지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이 핵심을 잃고서는 아무리 오랜 시간 종교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신앙을 담아낸 것입니다. 그 안에 신앙이 올바로 담겨 있다면 그 그릇이 이 모양이든 저 모양이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이라는 그릇이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좋은 것들을 많이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미사와 나머지 성사들은 참으로 소중한 보물들이지요. 우리에게 있어서 그만큼 신앙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다른 어떤 곳에도 없는 셈입니다. 그 외에도 일치된 전례와 교계제도, 세계 각국의 형제들이 하나된 모습은 우리가 지닌 종교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 핵심이 되는 신앙이 없다면 그 화려한 껍데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가지 계기로 이루어집니다. 대체로는 부모의 종교가 대물림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성당을 다니면 자녀들이 성당을 다니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가톨릭 신자라면 혼인 시에 분명한 약속을 하고 배우자의 약속도 받아냅니다. 바로 자녀들에게 가톨릭 신앙 교육을 시키겠다는 약속이지요. 이 약속은 하느님 앞에 하는 것으로 진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부모들은 관면혼을 한 외짝 교우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지닌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적지 않은 가톨릭 신앙의 부모들이 이 부분을 소홀히 합니다. 일단 자기 자신들의 신앙 자체를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껍데기, 외형은 가톨릭 신자로 유지하지만
내면에 정말 담아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꼬박꼬박 내면서 정작 선과 의로움을 소홀히 하는 바리사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속빈 강정이 되고 전해줄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신앙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만일 아이가 아직 성인 이전의 단계라면 어머니는 이제라도 최선을 다해서 구체적으로 신앙을 전하려고 노력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아닌 이상은 아직 후견인의 보호가 필요한 셈이고 부모님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 버렸다면 남은 것은 어머니 본인이 스스로 이미 몸담고 있는 종교 안에서 신앙의 참된 길을 찾으면서 구체적인 모범을 통해서 빛을 비추어주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자녀가 ‘가톨릭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통상적인 가톨릭 신앙인 부모님들의 바램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모의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를 훌쩍 넘어서서 이미 그 시기를 놓쳐 버렸다면 적어도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님의 남은 역할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가톨릭 신앙에 흥미를 잃었다고 해서 안달복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직 신앙 자체에 흥미를 잃은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모님이 구체적인 의지가 미비해서 신앙을 담을 외적 그릇에 대한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을 뿐이고, 역으로 다른 종교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신앙인,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이 되도록 열심히 묵주알을 굴리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총을 자녀들에게 듬뿍 부어주어서 결국에는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설령 그 시기가 부모님이 세상을 뜨고 난 뒤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니까요.
종교는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내재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거부한다고 거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차이를 올바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초월적인 것을 향한 방향성을 말합니다. 물론 이마저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교 껍데기를 지녔다고 신앙을 지닌 것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진지하게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이 근본적인 방향성을 검토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진지성이 있어야 어떤 종류의 종교에 참여하든지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이 핵심을 잃고서는 아무리 오랜 시간 종교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신앙을 담아낸 것입니다. 그 안에 신앙이 올바로 담겨 있다면 그 그릇이 이 모양이든 저 모양이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그릇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이라는 그릇이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좋은 것들을 많이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의 미사와 나머지 성사들은 참으로 소중한 보물들이지요. 우리에게 있어서 그만큼 신앙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은 다른 어떤 곳에도 없는 셈입니다. 그 외에도 일치된 전례와 교계제도, 세계 각국의 형제들이 하나된 모습은 우리가 지닌 종교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안에 핵심이 되는 신앙이 없다면 그 화려한 껍데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가지 계기로 이루어집니다. 대체로는 부모의 종교가 대물림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성당을 다니면 자녀들이 성당을 다니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가톨릭 신자라면 혼인 시에 분명한 약속을 하고 배우자의 약속도 받아냅니다. 바로 자녀들에게 가톨릭 신앙 교육을 시키겠다는 약속이지요. 이 약속은 하느님 앞에 하는 것으로 진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부모들은 관면혼을 한 외짝 교우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지닌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적지 않은 가톨릭 신앙의 부모들이 이 부분을 소홀히 합니다. 일단 자기 자신들의 신앙 자체를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껍데기, 외형은 가톨릭 신자로 유지하지만
내면에 정말 담아야 할 것들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꼬박꼬박 내면서 정작 선과 의로움을 소홀히 하는 바리사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 셈이지요. 그러다보니 속빈 강정이 되고 전해줄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신앙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만일 아이가 아직 성인 이전의 단계라면 어머니는 이제라도 최선을 다해서 구체적으로 신앙을 전하려고 노력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인이 아닌 이상은 아직 후견인의 보호가 필요한 셈이고 부모님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 버렸다면 남은 것은 어머니 본인이 스스로 이미 몸담고 있는 종교 안에서 신앙의 참된 길을 찾으면서 구체적인 모범을 통해서 빛을 비추어주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자녀가 ‘가톨릭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통상적인 가톨릭 신앙인 부모님들의 바램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부모의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를 훌쩍 넘어서서 이미 그 시기를 놓쳐 버렸다면 적어도 ‘참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님의 남은 역할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가톨릭 신앙에 흥미를 잃었다고 해서 안달복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직 신앙 자체에 흥미를 잃은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모님이 구체적인 의지가 미비해서 신앙을 담을 외적 그릇에 대한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을 뿐이고, 역으로 다른 종교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신앙인,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녀들이 되도록 열심히 묵주알을 굴리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총을 자녀들에게 듬뿍 부어주어서 결국에는 돌아와야 할 곳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설령 그 시기가 부모님이 세상을 뜨고 난 뒤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하느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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