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로마 1,21-22)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에 대해서 들은 이들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외우면서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또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그분이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 ‘앎’은 지식으로만 머물러 있을 뿐 전혀 실제적인 앎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리석음을 자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전능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진실로 겸손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참으로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사람은 거짓 겸손을 드러내게 됩니다. 즉, 겸손한 척 하면서 자신을 들어높이기에 바쁜 모양새를 드러내지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참으로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합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하느님의 지혜를 더욱 받아들이게 되지요. 하지만 거짓 겸손, 즉 교만으로 가득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는 하지요. 그래서 생각이 더욱 더 허망해지고 우둔해지고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임 자리에 가면 누가 우쭐거리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쭐거리는 당사자이지요. 자신의 것을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혀 자신이 무엇을 우쭐거리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간의 눈은 선글라스나 다른 천과 같은 것으로 가려지지만, 인간의 영혼은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 가려지게 됩니다. 돈을 벌려는 욕구, 명예를 얻으려는 욕구, 권력을 사로잡으려는 욕구와 같은 것들이 우리 영혼의 눈을 가리고 무엇이 진실한 삶인지, 어떤 길이 참되고 바른 길인지를 보는 눈을 가려 버리는 것이지요. 우리는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유명해지려고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권력을 잡으려고 불의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수많은 예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눈을 뜨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의 자리에 두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하느님의 자리에 올려두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장님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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