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 9,1-2)
우리의 기쁨은 찰나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입니다. 코메디 프로를 보면서 실실 흘리는 미소, 발작적으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향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아픔과 슬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아픔과 슬픔은 우리 자신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여전히 고집스런 상태로 구원되기를 거부할 때, 또한 아주 영악한 모습으로 구원에서 멀어져 갈때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하기를 잊어 버렸으니까요. 그들은 사랑해야 마땅할 아내를 때리면서도 상대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며, 자신의 악행으로 누군가 고통당하는 것에 동정을 느끼기는 커녕 즐기기까지 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아픔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기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발작적인 쾌락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기쁨은 ‘쾌락’과 깊게 연관된 것입니다. 그들은 봉사하는 기쁨, 나누는 기쁨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이웃과 함께 머무르면서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영적인 사정을 나누는 푸근한 시간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오직 세상의 높은 지위, 부귀 영화, 권력과 같은 것들이고 그렇게 자신을 드높여서 남들을 아래로 내리깔아 볼 수 있을 때에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기쁨이라는 것은 참으로 지독한 것이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아픔과 슬픔을 느낄 수 밖에요.
하지만 이 아픔과 슬픔, 즉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느끼는 이 아픔과 슬픔은 모두 합당하게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를 모두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무너질지 몰라도 우리의 희망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희망은 신적인 것이고 거룩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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