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드라마를 보거나 하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백혈병이었습니다. 창백한 피부로 침대에 곱상하게 누워서 기침이나 몇번 콜록하다가 죽으면 그만인 병으로 인식되곤 했지요. 하지만 제가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체험한 환자들의 일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도는 진료와 간호사들의 심박 체크, 이런 저런 검사로 분주한 일상, 때가 되면 또 밥은 먹어야 하고 밥을 먹고 나면 치워야 하고, 치료비 문제로 가족들간에 불화가 생기고 더 나은 침상을 위해서 병원측과 싸우기도 하고, 똥과 오줌은 때가 되면 나오는 것이라서 또 치워줘야 하고… 절대로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식의 곱상한 병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병이라는 것은 아프고 힘들고 괴로운 것이었지요.
사람들은 ‘신앙’을 시작하면서 저마다 곱상한 신앙 생활을 상상합니다. 신앙을 통해서 얻을 이득만을 생각하지요. 신앙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나의 내면을 보다 깊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전혀 다른 실상이 있게 마련입니다.
인내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로운 상황을 거쳐야 합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을 겪어야 하지요. 사람들은 그 결과물만을 탐내고 고상한 신앙생활을 하려 하지만 결국 마주치게 되는 것은 신앙의 현실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가식적인 신앙 부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절대로 신앙이 삶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면서 신앙 그룹의 이름으로 끼리끼리 몰려 다니며 세상의 계모임을 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들은 하느님, 예수님 따위 사실 아무 상관도 없고 그저 어느 찻집에 치즈케익이 더 싸고 맛있는가가 중요할 뿐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에 들어선 이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영적 전쟁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그 가운데 기쁨도 보람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기쁨에 이르기 위해서 참아 견뎌내어야 하는 시련도 만만치 않은 법입니다.
신앙은 로멘스가 아닙니다. 신앙은 현실입니다. 매일 매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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