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자비’를 주제로 신학적, 교회법적, 사목적 배경으로 3명의 강연자가 발표를 했습니다. 자비의 신학적 바탕은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나아가는 가를 잘 설명했습니다. 헌데 두번째 강의인 교회법적인 면에 들어서자 숨이 턱턱 막히는 게 느껴졌습니다. 원래 법이라는 것이 그러하듯이 모든 엄밀함과 엄중함 속에서 따져야 할 조건들을 다 따져가면서 올바르게 심판을 하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래서 두번째 발표 후에 의견이나 질문을 말하라고 할 때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법은 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벽은 필요하지요. 양들이 나가는 걸 막고, 이리들이 쳐들어오는 걸 막으니까요. 하지만 벽 밖에서 길을 잃은 양이 신음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 소리를 듣고 벽 안에서 가만히 계실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기꺼이 그 벽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서 길을 잃은 양을 구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더욱 어두운 곳까지 나가셔서 그 양을 데리고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법을 가르치시는 신부님의 일을 존중합니다. 벽을 보수하고 수리하고 정돈하는 일은 필요하지요. 하지만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성령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밖에서 길을 잃은 양이 신음하고 있다면 기꺼이 나가서 양을 메고 돌아올 수 있는 목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른쪽에 있던 강도에게 너 몇 살에 죄를 지었느냐고 물으시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하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도 용서해 돌려보내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법을 가르치는 신부님은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습니다. 죄와 범죄는 서로 다른 것이라며 죄는 용서해도 범죄 행위는 합당한 처벌이 필요한 거라고 하셨지요. 물론 신부님의 의중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자비의 해를 맞아서 이제 겨우 마음을 열고자 하는 다른 신부님들에게는 너무 딱딱한 것 같아서 괜히 한 번 나서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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