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님이 자비의 희년을 선포하시려고 열심히 준비 중이신 모양입니다. 이에 발맞추어 각 교구들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오늘 모임도 그와 관련된 것이었지요. 지구 사제단이 모여서 다음 전체 교구 모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는 주로 듣고만 있었지요. 헌데 한 신부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목적 실천과 교회 규정이 충돌할 때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둘 다 양보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한마디로 법은 법대로 지켜야 하고 사목적 실천은 자비를 바탕으로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우리는 양 우리 안의 양떼입니다. 양우리는 법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우리 밖에는 두 종류의 무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길을 잃은 양 떼이고, 다른 하나는 늑대들이지요. 지금까지 교회는 우리 안에서 애타게 밖에 있는 양을 부르기만 했습니다. 우리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 목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양들에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양들이 없지요. 교황님께서 이번에 이런 기회를 마련하시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더러 위험을 좀 감수하더라도 우리 밖으로 나가서 양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우리 안에 머물러서 게으르게 지냈으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를 벗어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바리사이들과의 논쟁에 있어서 안식일일지라도 해야 할 일을 하셨지요.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법을 깨부수는 것은 아니었지요. 오히려 법 안에 있는 정신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밖에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존재가 잃어버린 양 떼인가, 아니면 늑대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 분별을 올바로 하는 데에 주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회를 이용해서 우리 안의 양 떼를 공격하려는 무리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즉, 아무런 회개, 내면의 변화 없이 외적 형식의 용서를 받고 선한 양떼에 해를 입히려는 이들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이 분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황님은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 잃은 양 떼를 데려오고 싶어 하십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사제단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지금까지 우리 안의 양들과 어울리면서 너무나 편안한 삶을 영위해 온 것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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