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루카 10,29)
율법 교사는 자기 안에 모든 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것이었지요. 즉,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이 쌓아둔 지식으로 압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잘못해도 크게 잘못한 셈이지요. 진리이신 분과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가 스스로 생각하게 도와 주십니다. 예수님은 뚜렷한 방향을 알고 있었고 율법 교사는 율법 지식만을 잔뜩 지닌 채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은 많은데 그 수많은 생각들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릇된 방향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생각을 총동원해서 이웃을 증오하는 근거로 삼으면서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답을 알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악한 의도는 그 모든 능력들을 우리 스스로를 저주하는 데에 쓰곤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서, 더 사랑하기 위해서, 더 나은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율법 교사는 자기 안에 모든 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것이었지요. 즉,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자신이 쌓아둔 지식으로 압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잘못해도 크게 잘못한 셈이지요. 진리이신 분과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가 스스로 생각하게 도와 주십니다. 예수님은 뚜렷한 방향을 알고 있었고 율법 교사는 율법 지식만을 잔뜩 지닌 채로 예수님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은 많은데 그 수많은 생각들을 어떤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릇된 방향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생각을 총동원해서 이웃을 증오하는 근거로 삼으면서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답을 알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악한 의도는 그 모든 능력들을 우리 스스로를 저주하는 데에 쓰곤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서, 더 사랑하기 위해서, 더 나은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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