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12,15)
진리의 말씀이지만 이를 깨닫는 데에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탐욕을 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재산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필요할 때에 쓰려고 모아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 필요한 때라는 것은 언제를 말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재산이 필요해지는 때는 내가 궁핍해지는 때입니다. 즉, 내가 늙고, 병들고, 사고를 당하고 하는 식이지요. 그러한 때에 내가 쌓아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생존’에 대한 욕구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다시 요약 정리하자면 우리는 지상에서의 삶을 위해서 어떻게든 모으고 쌓아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반대편에 하느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지상에서 최대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받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들은 다른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삶’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을 바탕으로 사는 삶에는 전혀 다른 맛이 존재합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차이점은 ‘손해 볼 줄도 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손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자발적으로 잃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오게 될지 분명히 아는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서 정말 가난한 가족이 있어서 자신의 사비를 탈탈 털어서 도와 주었다고 합시다. 그럼 이 사람은 세상의 자녀의 관점으로는 멍청하게 가진 걸 다 내어놓은 셈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의 관점으로는 보다 큰 상급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진정한 의미로 봉사할 줄 압니다. 하지만 세상의 자녀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이 없으면 봉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박수라도 쳐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헛되이 모으고 쌓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미친듯이 쌓다가 하느님이 정한 때가 되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돌아다보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그가 모으고 쌓은 것은 모두 다른 이들 차지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의 영혼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그래서 부자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그렇게도 힘든 법입니다. 그러나 이를 깨닫고 일찍부터 실천하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마다 모으고 쌓느라고 정신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는 것을 ‘정당한 탐욕’으로 포장하려고 합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정당한 탐욕인 것일까요? 도대체 두 단어가 조화를 이루기나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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