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자양분은 뿌리로부터 끌어올립니다. 뿌리를 통해 끌어올려진 자양분이 나무의 열매를 형성하는 것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깊은 곳에 뿌리박고 무언가를 빨아당기는 것이 있어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말과 행동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바오로 사도는 ‘쓴 열매를 맺는 뿌리’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한 사람에게 쓴 맛을 느끼게 하는 열매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표현이 달라져서 모를 뿐이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특정한 악습 때문에 그러하지요. 그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만나면 마치 기를 빨리는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전혀 푸근하지 않고 굉장히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바로 쓴 열매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쓴 열매는 상하고 못쓰는 열매입니다. 즉 열매가 아닌 것이지요. 해충이 파먹고 당분이 하나도 없는 쓸모없는 열매입니다. 때로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하나도 없기도 합니다.
그처럼 한 인간도 내면의 선한 의지가 없고 인내도 겸손도 사랑도 정의도 없이 썩어버리고 맙니다. 때로는 어둠의 영의 사주를 받아 그리되기도 하지요. 겉은 번지르르 할 수 있습니다. 돈과 명예로 외모를 꾸미지요 하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이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런 열매를 형성하는 뿌리가 숨어 있습니다. 핵심은 ‘이기심’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 다른 이를 전혀 도울 줄 모르는 사람. 언뜻 남을 생각해 주는 척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고질적인 이기심의 이면에는 ‘하느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거룩하고 드높은 차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 안으로 파고들어 버리게 되고 썩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배운다 해도 그 가치의 근원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결국 사람은 교만해지고 마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할 줄을 배워야 하고 그분이 내어주시는 양분을 받아들일 줄 아는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쓴 열매를 맺는 뿌리’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한 사람에게 쓴 맛을 느끼게 하는 열매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실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표현이 달라져서 모를 뿐이지요.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특정한 악습 때문에 그러하지요. 그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만나면 마치 기를 빨리는 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전혀 푸근하지 않고 굉장히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바로 쓴 열매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쓴 열매는 상하고 못쓰는 열매입니다. 즉 열매가 아닌 것이지요. 해충이 파먹고 당분이 하나도 없는 쓸모없는 열매입니다. 때로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하나도 없기도 합니다.
그처럼 한 인간도 내면의 선한 의지가 없고 인내도 겸손도 사랑도 정의도 없이 썩어버리고 맙니다. 때로는 어둠의 영의 사주를 받아 그리되기도 하지요. 겉은 번지르르 할 수 있습니다. 돈과 명예로 외모를 꾸미지요 하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이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런 열매를 형성하는 뿌리가 숨어 있습니다. 핵심은 ‘이기심’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 다른 이를 전혀 도울 줄 모르는 사람. 언뜻 남을 생각해 주는 척을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고질적인 이기심의 이면에는 ‘하느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은 거룩하고 드높은 차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 안으로 파고들어 버리게 되고 썩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를 배운다 해도 그 가치의 근원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결국 사람은 교만해지고 마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사랑할 줄을 배워야 하고 그분이 내어주시는 양분을 받아들일 줄 아는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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