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지푸라기라도 잡게 됩니다.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마련이지요. 자신이 지금까지 의존해 오고 믿어왔던 것들을 모두 이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갖다 쓸 게 있는 동안 인간의 자존감은 살아있게 됩니다. 아무리 중병에 걸려도 보험이 있고 재력이 뒷받침하는 동안 사람은 ‘교만’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나 안 죽어!”라고 하다가 죽는 것이 가련한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특성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를 살리고자 그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십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지금껏 보살펴오신 손을 잠시 거두어 들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자신에게 재앙을 쏟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잠시 보살피던 손을 거두어 들이셨을 뿐이고 그마저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배은망덕한 것은 우리인데도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참된 신심이 있는 이는 기댈 곳이 하느님 뿐입니다. 그들은 설령 돈이 충분히 있어도 돈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지팡이 하나만 지고 단벌 신사로 온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느님의 힘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댈 곳이 있는 이상 우리는 하느님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황사가 오기 전까지는 맑은 공기의 소중함에 대해서 따로 성찰하는 사람은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에스테르 4장 17절)
그래서 갖다 쓸 게 있는 동안 인간의 자존감은 살아있게 됩니다. 아무리 중병에 걸려도 보험이 있고 재력이 뒷받침하는 동안 사람은 ‘교만’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나 안 죽어!”라고 하다가 죽는 것이 가련한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우리의 특성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를 살리고자 그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십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지금껏 보살펴오신 손을 잠시 거두어 들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이 자신에게 재앙을 쏟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잠시 보살피던 손을 거두어 들이셨을 뿐이고 그마저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배은망덕한 것은 우리인데도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참된 신심이 있는 이는 기댈 곳이 하느님 뿐입니다. 그들은 설령 돈이 충분히 있어도 돈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하느님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지팡이 하나만 지고 단벌 신사로 온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느님의 힘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댈 곳이 있는 이상 우리는 하느님을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황사가 오기 전까지는 맑은 공기의 소중함에 대해서 따로 성찰하는 사람은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에스테르 4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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