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불안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가버리고 규정된 것이니까요. 그것은 확고하게 굳어져버린 것입니다. 과거가 미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에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해서 불안해 합니다. 인간의 불안은 ‘미래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가오지 않은 것에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고 있습니까?
물은 떨어지고, 떨어진 열을 받아서 수증기가 되고, 그 물은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자연은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물들은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수증기를 잡아두려 해 봐야 소용이 없고 물을 공중에 던져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비롯하였고 제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에게 돌아갑니다. 아, 이건 알고 계셨다구요? 그럼 뭐가 불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분 앞에 갔을 때에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것, 그것이 근본적인 걱정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걱정이 되지 못합니다. 자녀가 아버지 앞에 나서는 것이 어찌 불안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행복이지요.
자녀가 아닌 자, 종은 불안해 합니다. 자녀가 아닌 자, 도둑은 불안해 합니다. 함께 모아들이지 않은 이들, 그저 제 몫에 혈안이 되어 아버지의 품을 떠나간 탕자들이 불안해하지요.
우리는 뉘우치는 탕자, 다시 아버지의 품안에 받아들여진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과 충만함으로 하느님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불안은 우리가 여전히 세상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에 불안이 사라지고 용기가 솟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하기에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직도 너무나 강렬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진실로 무엇이 다가올지 모르고 있습니까?
물은 떨어지고, 떨어진 열을 받아서 수증기가 되고, 그 물은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자연은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물들은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말이지요. 수증기를 잡아두려 해 봐야 소용이 없고 물을 공중에 던져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비롯하였고 제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에게 돌아갑니다. 아, 이건 알고 계셨다구요? 그럼 뭐가 불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분 앞에 갔을 때에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는 것, 그것이 근본적인 걱정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자녀’에게는 걱정이 되지 못합니다. 자녀가 아버지 앞에 나서는 것이 어찌 불안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행복이지요.
자녀가 아닌 자, 종은 불안해 합니다. 자녀가 아닌 자, 도둑은 불안해 합니다. 함께 모아들이지 않은 이들, 그저 제 몫에 혈안이 되어 아버지의 품을 떠나간 탕자들이 불안해하지요.
우리는 뉘우치는 탕자, 다시 아버지의 품안에 받아들여진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기쁨과 충만함으로 하느님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불안은 우리가 여전히 세상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에 불안이 사라지고 용기가 솟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체험을 하기에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아직도 너무나 강렬할 것 같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