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1베드3,18-19)
영과 육이 결합된 상태,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둘이 충만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상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다만 관찰할 수 있다면 영이 떠나간 육신을 관찰할 수 있지요.
영이 떠나가면 육은 해체가 시작됩니다. 쉽게 말해서 썩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의문이 시작됩니다. ‘영은?’
우리는 더이상은 ‘관찰’할 수 없습니다. 영 자체가 관칠이 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영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과 관련된 모든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 역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집착해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눈에 보이는 ’재물’에 민감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육에 집착하는 동안 영의 생명이 사라져갑니다.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영을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절로 죽어가는 셈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영은 ‘죽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을 신경쓰지 않고 방치하고 육만을 챙기게 되면 영은 서서히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감옥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스스로의 탐욕, 이기심, 허영과 같은 것이 스스로의 영을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가두는 감옥이라니요.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어느 식당에 가도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급 음식에 길들기 시작한 사람은 고급 음식이 아닌 싸구려 음식을 접하게 될 때에 ‘먹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배가 어느정도 고파도 맛있는 음식이 아니면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자신을 가두어 놓은 셈이지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극에 달하면 이 영적 감옥의 벽도 높아지는 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감옥을 넘어서서도 그에게 다가가시어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벽을 뚫고 들어오실 때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잡지 못하면 떠나간 기회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과 육이 결합된 상태, 우리는 그것을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둘이 충만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상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다만 관찰할 수 있다면 영이 떠나간 육신을 관찰할 수 있지요.
영이 떠나가면 육은 해체가 시작됩니다. 쉽게 말해서 썩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의문이 시작됩니다. ‘영은?’
우리는 더이상은 ‘관찰’할 수 없습니다. 영 자체가 관칠이 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영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영과 관련된 모든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 역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들,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집착해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눈에 보이는 ’재물’에 민감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육에 집착하는 동안 영의 생명이 사라져갑니다.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영을 전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절로 죽어가는 셈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영은 ‘죽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을 신경쓰지 않고 방치하고 육만을 챙기게 되면 영은 서서히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감옥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스스로의 탐욕, 이기심, 허영과 같은 것이 스스로의 영을 가두어 두는 것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가두는 감옥이라니요. 이런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어느 식당에 가도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급 음식에 길들기 시작한 사람은 고급 음식이 아닌 싸구려 음식을 접하게 될 때에 ‘먹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배가 어느정도 고파도 맛있는 음식이 아니면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자신을 가두어 놓은 셈이지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극에 달하면 이 영적 감옥의 벽도 높아지는 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감옥을 넘어서서도 그에게 다가가시어 말씀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벽을 뚫고 들어오실 때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잡지 못하면 떠나간 기회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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