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성소’는 남자는 신학교, 또는 수도회 여자는 여자 수도회로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이는 성소의 좁은 개념입니다. 진정한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이고 이는 모든 신앙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받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소’와 ‘이성교제’는 실은 별달리 고려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성교제를 한다고 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럼 이미 결론은 도출된 셈입니다.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를 사귀면서도 얼마든지 근본적인 의미의 성소의 길은 계속될 수 있고 계속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는 ‘성소’ 안에는 ‘독신생활’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왜 사제와 수도자와 같은 이들에게 ‘독신생활’이라는 규정을 내린 것일까요? 제가 ‘교회’가 그랬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따로 그런 규정을 내리신 게 아닙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남녀 관계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합을 축복하셨지요.
독신생활은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인간의 규정입니다. 하느님의 법, ‘신법’이 아니지요. 교회 재정의 세습 문제와 여러가지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세워진 규율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굳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자기 스스로의 온전한 선택으로 ‘독신생활’을 지켜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요. 엄밀히 말해서 교회가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독신을 선택하기 싫으면 ‘서품’이나 ‘수도허원’을 포기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지요. 물론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10년 가까이를 준비해서 서품을 받기 직전에 그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한국 교회와 같은 분위기에는 ‘역적’으로 몰리기 좋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는 마치 ‘이성교제’는 ‘성소’에 대립되는 것처럼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성도 사귀어 결혼도 하고 싶고, 특별한 성소의 길도 가고 싶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아직까지는’ 그런 옵션은 없습니다. ‘혼인’과 ‘사제품, 또는 수도자적 서원’ 둘 중 하나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교황님이 특별령을 내리셔서 허용이 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의 직분 자체가 교회를 통한 봉사이기에 교회가 아직 허락하지 않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교회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것은 위선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아직 성직자와 수도자의 혼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바탕으로 보충설명을 드리자면, 만일 저에게 예비 성소자나 예비 수도자가 와서 이성교제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성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저로서는 일단 ‘사귀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만 책임감 있게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겠습니다. 만일 그 상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진다면 ‘사제성소’나 ‘수도생활’에 대한 선택을 미뤄두고 그 상대와 열심히 사랑하면서 혼인의 성소를 가꾸어 나가라고 조언할 것입니다. 충실한 남편과 아빠, 충실한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상대와 사귀면서도 보다 더 큰 사랑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없다면 그때는 ‘사제성소’나 ‘수도성소’를 위해서 그 이성교제를 정돈할 것을 권할 것입니다.
결국 정해진 ‘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죄가 되지 않는 것인데도 좋아하는 것을 가로막으면 훗날 그것을 가로막는 데 일조한 이들을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미 사제가 된 사람이나 종신서원을 한 수도자에게는 지금의 ‘성소’를 잘 지켜 나가라고 권할 것입니다. 그들의 성소의 길에는 더는 다른 옵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성소’와 ‘이성교제’는 실은 별달리 고려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성교제를 한다고 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럼 이미 결론은 도출된 셈입니다. 남자친구 또는 여자친구를 사귀면서도 얼마든지 근본적인 의미의 성소의 길은 계속될 수 있고 계속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부르는 ‘성소’ 안에는 ‘독신생활’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왜 사제와 수도자와 같은 이들에게 ‘독신생활’이라는 규정을 내린 것일까요? 제가 ‘교회’가 그랬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따로 그런 규정을 내리신 게 아닙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남녀 관계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합을 축복하셨지요.
독신생활은 ‘교회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인간의 규정입니다. 하느님의 법, ‘신법’이 아니지요. 교회 재정의 세습 문제와 여러가지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세워진 규율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굳어져 오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자기 스스로의 온전한 선택으로 ‘독신생활’을 지켜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요. 엄밀히 말해서 교회가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독신을 선택하기 싫으면 ‘서품’이나 ‘수도허원’을 포기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지요. 물론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10년 가까이를 준비해서 서품을 받기 직전에 그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또한 한국 교회와 같은 분위기에는 ‘역적’으로 몰리기 좋은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는 마치 ‘이성교제’는 ‘성소’에 대립되는 것처럼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성도 사귀어 결혼도 하고 싶고, 특별한 성소의 길도 가고 싶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아직까지는’ 그런 옵션은 없습니다. ‘혼인’과 ‘사제품, 또는 수도자적 서원’ 둘 중 하나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교황님이 특별령을 내리셔서 허용이 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의 직분 자체가 교회를 통한 봉사이기에 교회가 아직 허락하지 않는 것에 반대하면서도 교회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것은 위선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아직 성직자와 수도자의 혼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바탕으로 보충설명을 드리자면, 만일 저에게 예비 성소자나 예비 수도자가 와서 이성교제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성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저로서는 일단 ‘사귀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만 책임감 있게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겠습니다. 만일 그 상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진다면 ‘사제성소’나 ‘수도생활’에 대한 선택을 미뤄두고 그 상대와 열심히 사랑하면서 혼인의 성소를 가꾸어 나가라고 조언할 것입니다. 충실한 남편과 아빠, 충실한 아내와 엄마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상대와 사귀면서도 보다 더 큰 사랑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없다면 그때는 ‘사제성소’나 ‘수도성소’를 위해서 그 이성교제를 정돈할 것을 권할 것입니다.
결국 정해진 ‘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죄가 되지 않는 것인데도 좋아하는 것을 가로막으면 훗날 그것을 가로막는 데 일조한 이들을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미 사제가 된 사람이나 종신서원을 한 수도자에게는 지금의 ‘성소’를 잘 지켜 나가라고 권할 것입니다. 그들의 성소의 길에는 더는 다른 옵션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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