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느끼게 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은 잘 삽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편의점에 가면 그 작은 공간에 눈과 귀와 코와 입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도로도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으며 네비게이션과 같은 편의 시설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제가 머무는 곳은 많은 것이 미흡합니다. 경제적인 인프라가 전혀 없지요. 이것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의미로 대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마음은 메말라 있습니다. 너무나 메말라서 푸석푸석하게 먼지가 날 지경입니다. 그들 안에서 ‘샘’을 발견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모두 목말라 하기만 하고 그 누구 하나가 샘을 퍼주지 못합니다. 서로를 향해 사랑을 갈구하지만 서로 남은 물방울을 나누어 마시고는 목마름에 고통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로 가진 것을 찬양하고 재주를 찬양하고 그렇게 서로 영광을 주고 받지만 결국 집에 돌아오면 허황한 가슴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켭니다. 그리고 다시 세뇌 교육을 받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은 이거야’라는 세뇌 교육입니다.
새로운 상품을 선전하고, 새로운 놀이문화를 선전하고, 각종 여행지를 소개하고, 온갖 신기한 일들을 떠벌리다보니 이젠 소재가 다 떨어져 갑니다. 그래서 별 희한한 것들이 다 등장합니다. 이런 것도 보여주나 할 정도의 것들을 보여줍니다. 자극에 둔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자극적인 것을 찾기에 뉴스도 모든 프로그램도 더욱 자극적이고 섬득한 것들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웃기는 표현이지만 한국이 부족한 것은 바로 ‘부족’입니다. 한국은 ‘부족함’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전에는 음식을 못먹어서 난리였는데 지금은 음식을 안 먹으려고 난리입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들, 모든 쾌락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절제없이 받아들인 음식과 정보들이 그들의 몸을 비대하게 하고 정신을 멍하게 합니다.
하루 중에 단 오분이라도 조용한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을 추스릴 시간이 없습니다. 먹고 또 먹고,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그렇게 오감을 가득 채워 나갑니다. 그러는 사이 ‘공허감’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외로움이 지독히도 싫어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 더욱 극심한 ‘고독’을 느낍니다. 내가 그에게서 뭔가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소진 시키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길 모퉁이 모퉁이마다 서로 만나라고 만들어놓은 카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의 만남은 소비적이고 허황된 것일 뿐입니다. 정말 좋은 벗이 있으면 뒷간 앞에서라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터이지만 최고급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한 그 사람에게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 말고는 얻을 게 없습니다.
신앙은 ‘신앙활동’이 되어버렸고, 앙꼬 없는 진득하지 못한 강론은 신자들이 주리를 틀게 만듭니다. 여전히 성당 안에 머무는 이들은 쉬는 교우, 냉담자에게 불성실하다고 차가운 시선을 돌리지만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리 되진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으며 그런 시선을 돌리는 자신도 사실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느님의 부재’입니다. 하느님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은 있고 격식있는 전례는 있는데 ‘하느님’을 찾기가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하느님을 나누려는 이도 없습니다. 누군가 시동을 걸어야 차가 움직이는데 저마다 쳐다보면서 상대가 그렇게 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신자이면서도 솔직히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서로를 알아보는 진실한 이들이 있고,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독히도 ‘계산적’이기에 그들의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안전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는 곳에 그들은 자진해서 찾아갑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보듬어 안습니다. 그렇게 ‘따스함’을 키워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이 글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글이며 제 개인적인 성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전혀 공인받지 않은 의견입니다. 얼마든지 묵살해도 좋은 의견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마십시오. 그저 한 사람의 의견으로 옆으로 제쳐두면 됩니다. 그러나 뭔가 생각할 거리가 주어진다면 잠시 머물러 생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정말 우리는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늘 영육간의 건강을 빌면서 정말 영혼이 건강한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잘 삽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편의점에 가면 그 작은 공간에 눈과 귀와 코와 입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도로도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있으며 네비게이션과 같은 편의 시설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에 반해 제가 머무는 곳은 많은 것이 미흡합니다. 경제적인 인프라가 전혀 없지요. 이것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의미로 대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마음은 메말라 있습니다. 너무나 메말라서 푸석푸석하게 먼지가 날 지경입니다. 그들 안에서 ‘샘’을 발견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모두 목말라 하기만 하고 그 누구 하나가 샘을 퍼주지 못합니다. 서로를 향해 사랑을 갈구하지만 서로 남은 물방울을 나누어 마시고는 목마름에 고통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서로 가진 것을 찬양하고 재주를 찬양하고 그렇게 서로 영광을 주고 받지만 결국 집에 돌아오면 허황한 가슴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켭니다. 그리고 다시 세뇌 교육을 받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은 이거야’라는 세뇌 교육입니다.
새로운 상품을 선전하고, 새로운 놀이문화를 선전하고, 각종 여행지를 소개하고, 온갖 신기한 일들을 떠벌리다보니 이젠 소재가 다 떨어져 갑니다. 그래서 별 희한한 것들이 다 등장합니다. 이런 것도 보여주나 할 정도의 것들을 보여줍니다. 자극에 둔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자극적인 것을 찾기에 뉴스도 모든 프로그램도 더욱 자극적이고 섬득한 것들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웃기는 표현이지만 한국이 부족한 것은 바로 ‘부족’입니다. 한국은 ‘부족함’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전에는 음식을 못먹어서 난리였는데 지금은 음식을 안 먹으려고 난리입니다. 절제가 없는 사람들, 모든 쾌락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절제없이 받아들인 음식과 정보들이 그들의 몸을 비대하게 하고 정신을 멍하게 합니다.
하루 중에 단 오분이라도 조용한 시간이 없습니다. 생각을 추스릴 시간이 없습니다. 먹고 또 먹고,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그렇게 오감을 가득 채워 나갑니다. 그러는 사이 ‘공허감’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외로움이 지독히도 싫어 사람을 만나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 더욱 극심한 ‘고독’을 느낍니다. 내가 그에게서 뭔가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소진 시키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길 모퉁이 모퉁이마다 서로 만나라고 만들어놓은 카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의 만남은 소비적이고 허황된 것일 뿐입니다. 정말 좋은 벗이 있으면 뒷간 앞에서라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터이지만 최고급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한 그 사람에게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야기 말고는 얻을 게 없습니다.
신앙은 ‘신앙활동’이 되어버렸고, 앙꼬 없는 진득하지 못한 강론은 신자들이 주리를 틀게 만듭니다. 여전히 성당 안에 머무는 이들은 쉬는 교우, 냉담자에게 불성실하다고 차가운 시선을 돌리지만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리 되진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으며 그런 시선을 돌리는 자신도 사실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하느님의 부재’입니다. 하느님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은 있고 격식있는 전례는 있는데 ‘하느님’을 찾기가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도 없고, 하느님을 나누려는 이도 없습니다. 누군가 시동을 걸어야 차가 움직이는데 저마다 쳐다보면서 상대가 그렇게 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아니, 신자이면서도 솔직히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서로를 알아보는 진실한 이들이 있고,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낍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독히도 ‘계산적’이기에 그들의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안전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는 곳에 그들은 자진해서 찾아갑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보듬어 안습니다. 그렇게 ‘따스함’을 키워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이 글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글이며 제 개인적인 성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전혀 공인받지 않은 의견입니다. 얼마든지 묵살해도 좋은 의견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한 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마십시오. 그저 한 사람의 의견으로 옆으로 제쳐두면 됩니다. 그러나 뭔가 생각할 거리가 주어진다면 잠시 머물러 생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정말 우리는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늘 영육간의 건강을 빌면서 정말 영혼이 건강한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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