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서로의 뜻을 헷갈려 합니다. 내가 ‘아’라고 했는데 상대가 ‘오’라고 들었다고 하는 경우, 내가 발음을 잘못 했을 수도 있고, 상대가 귀가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마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중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 다 앞으로 나아가는 중에 발걸음 수가 서로 틀리다고 비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근본 의도 자체가 다르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모으려는 자와 흐트리려는 자는 분명 다른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소소한 부분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런 소소한 오해 하나하나를 모두 체크하고 ‘완벽함’에 이르려고자 하는 것은 무리한 행동입니다. 다만 그의 방향을 분별하고 그가 이르려는 최종 목적지가 바람직하고 좋은 것인가를 분별해야 할 뿐입니다.
이러한 일은 신학교 안에서도, 수도원 안에서도,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표현을 하고 다르게 알아듣곤 합니다. 하지만 근본 방향은 모두 같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며 그 사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둘 다 앞으로 나아가는 중에 발걸음 수가 서로 틀리다고 비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근본 의도 자체가 다르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모으려는 자와 흐트리려는 자는 분명 다른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소소한 부분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그런 소소한 오해 하나하나를 모두 체크하고 ‘완벽함’에 이르려고자 하는 것은 무리한 행동입니다. 다만 그의 방향을 분별하고 그가 이르려는 최종 목적지가 바람직하고 좋은 것인가를 분별해야 할 뿐입니다.
이러한 일은 신학교 안에서도, 수도원 안에서도, 본당 공동체 안에서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표현을 하고 다르게 알아듣곤 합니다. 하지만 근본 방향은 모두 같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며 그 사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웃을 향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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