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1코린10,31)
거룩한 뜻을 알고도 방해를 놓는 이가 있습니다. 그에게 근본 의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좋고 싫고가 중요합니다.
“자, 우리 친구 나눠먹을 줄 알아야 좋은 거겠지? 자, 우리 동생이랑 나눠 먹자?”
이 순간, 아이의 마음이 분별됩니다. 좋고 나쁨을 아이는 분별할 수 있지만, 자신이 먹으려던 것에 대한 탐욕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지요. 이 단순한 구도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정말 옳고 그르고의 문제이기보다 단순히 내가 좋고 싫기 때문에 나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시사문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전사처럼 게시물들을 올려대는 그들이 과연 정의와 진리와 선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저는 무작정 수긍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의 주변 이웃들과의 관계도 올바로 정돈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가다 만난 걸인에게는 손을 움츠리면서 인터넷 상으로 강아지가 구타 당했다고 화를 내는 이가 어찌 진리와 선과 정의에 밝은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흥분하는 주제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정말 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라 끼어드는 것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악성 댓글로 어느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에는 혀를 차면서 정작 본인은 내 생활 환경 안에 있는 누군가를 뒤에서 험담하고 있다면 그는 제 꼬락서니도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장님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10,31)
거룩한 뜻을 알고도 방해를 놓는 이가 있습니다. 그에게 근본 의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좋고 싫고가 중요합니다.
“자, 우리 친구 나눠먹을 줄 알아야 좋은 거겠지? 자, 우리 동생이랑 나눠 먹자?”
이 순간, 아이의 마음이 분별됩니다. 좋고 나쁨을 아이는 분별할 수 있지만, 자신이 먹으려던 것에 대한 탐욕도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지요. 이 단순한 구도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 정말 옳고 그르고의 문제이기보다 단순히 내가 좋고 싫기 때문에 나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시사문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전사처럼 게시물들을 올려대는 그들이 과연 정의와 진리와 선을 위해서 투쟁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저는 무작정 수긍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의 주변 이웃들과의 관계도 올바로 정돈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길가다 만난 걸인에게는 손을 움츠리면서 인터넷 상으로 강아지가 구타 당했다고 화를 내는 이가 어찌 진리와 선과 정의에 밝은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흥분하는 주제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정말 나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라 끼어드는 것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악성 댓글로 어느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에는 혀를 차면서 정작 본인은 내 생활 환경 안에 있는 누군가를 뒤에서 험담하고 있다면 그는 제 꼬락서니도 올바로 보지 못하는 장님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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