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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창세2,23)

아담이 이브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같은 뼈와 같은 살을 이어받은 존재입니다. 원래 한 몸이었던 것이 갈라졌을 뿐입니다.

자기 뺨을 때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팔을 꼬집고 할퀴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신경망이 연결되어 있고 피를 나누는 동안은 ‘한 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고 따라서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배우자는 나와 한 몸입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내 왼손가락에 반지를 끼워도 오른손은 불평하지 않으며 내 발이 더 더럽고 힘든 일을 한다고 투덜대는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한 몸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만큼 어리석은 존재는 없습니다. 남편을 헐뜯는 아내만큼 어리석은 존재도 없지요. 제 몸을 때리고 제 몸을 비난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지요? 남편은 가정의 우뚝선 머리이며 아내는 가정의 따스한 가슴입니다. 한 몸이었던 것이 떨어져 살다가 결국 만난 것일 뿐입니다.

이것이 혼인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혼인은 신중해야 하며, 굳은 결심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혼인은 한순간의 호르몬 작용이 아니며 꾸준한 선택, 상대를 위해서 나의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의지적 선택의 행위이어야 합니다.

서로 다투지 말고 한 몸이 되어 살아가십시오.

신앙이라는 것은 그래서 혼인에 있어서 절대적 요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배우자 중의 한 쪽이 신앙이 없는데도 혼인을 하려는 이는 먼저 자신의 신앙을 잘 살펴야 하고 배우자의 신앙을 추스릴 각오를 다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문제는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신앙’과 연관된 문제는 우리가 어느 대학을 들어가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와는 판이하게 다를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근본 선택’이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서로 진정으로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철없는 사랑으로 서로 하나가 되고자 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내가 신앙이 있고 그에 따라 게으른 남편을 신앙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드뭅니다. 여성분들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남자들은 신앙적인 면에서 감수성도 많이 떨어지고 적극성도 많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아내가 그 부분을 보완해야 합니다. 귀찮아하는 남편을 구스르고 달래어서 신앙의 참 맛을 느끼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무리해서 밀어붙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나마 있던 마음마저 사라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해 나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아내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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