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레위 19,15)
우리는 통상적으로 세력 있는 이를 우대합니다. 그가 가진 힘과 권력을 부러워하며 그와의 친분을 통해서 뭐라도 얻어볼까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으로 그것을 비판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세력 있는 이에게 굽신거려서는 안된다고 그의 권력의 허상을 쫓아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행하는 이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반대편의 가르침도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일종의 죄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쩡하게 사는데 가난한 이들이 눈에 밟히니 뭐라도 잘 해주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서도 오류가 발생합니다.
가난한 이를 두둔한다는 의미는 그들이 ‘오류’에 있는데도 그들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지는 않고 그저 ‘던져주기’만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나름의 세상이 구축되어 있고 그들 안에서도 옳고 그른 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부유한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너무나 안타까워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이지요. 어린 아이가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생기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턱대고 귀엽다고 오냐오냐 하다보면 잘못된 버릇이 생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그들과 함께 머물러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보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사제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또 그들을 도와주려는 이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늘상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어리광을 부리려 하고 도와주려는 이들은 뭐든 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적절한 조절을 하지 않으면 이내 가난한 이들은 쉽게 얻는 물질을 통해서 ‘탐욕’이라는 내면의 악에 물들어 버리고 맙니다.
가난한 이들은 무조건 먹을 것을 먹고 나가 떨어지는 이들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도 인간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비록 해진 옷을 입고,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 살지만 그의 영혼은 잘 사는 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진정한 방법은 부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세력 있는 이를 우대합니다. 그가 가진 힘과 권력을 부러워하며 그와의 친분을 통해서 뭐라도 얻어볼까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반대쪽으로 그것을 비판하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세력 있는 이에게 굽신거려서는 안된다고 그의 권력의 허상을 쫓아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행하는 이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전혀 반대편의 가르침도 전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일종의 죄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쩡하게 사는데 가난한 이들이 눈에 밟히니 뭐라도 잘 해주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서도 오류가 발생합니다.
가난한 이를 두둔한다는 의미는 그들이 ‘오류’에 있는데도 그들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지는 않고 그저 ‘던져주기’만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나름의 세상이 구축되어 있고 그들 안에서도 옳고 그른 일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부유한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너무나 안타까워보이고 안쓰러워 보이는 것이지요. 어린 아이가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생기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턱대고 귀엽다고 오냐오냐 하다보면 잘못된 버릇이 생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그들과 함께 머물러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보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사제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또 그들을 도와주려는 이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늘상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어리광을 부리려 하고 도와주려는 이들은 뭐든 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적절한 조절을 하지 않으면 이내 가난한 이들은 쉽게 얻는 물질을 통해서 ‘탐욕’이라는 내면의 악에 물들어 버리고 맙니다.
가난한 이들은 무조건 먹을 것을 먹고 나가 떨어지는 이들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도 인간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비록 해진 옷을 입고,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 살지만 그의 영혼은 잘 사는 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진정한 방법은 부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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