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가르침이 힘든 이유는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라는 것은 어느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생을 다해서 나아가야 하는 변화이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교회적인 용어로 이를 ‘매일의 회개’라고 부르지요.
죄를 짓고 있는 사람에게는 죄 짓기를 그만두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죄를 짓는 것을 그만두고 교회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이에게는 의무적인 교회 생활을 그만두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의무적인 교회생활을 그만두고 열심히 살려는 이에게는 가난한 이를 보살피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가난한 이를 보살피는 이에게는 가난한 이를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가난한 이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부유한 이들마저도 끌어안는 마음의 품을 가지라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우리가 어디에 안주하려고 하는 그 순간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여 우리를 더욱 ‘완전’하게 하려고 애쓰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방향지시를 받아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안주하고 싶은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 가자’고 하시니 말입니다. 이제 그만 한 고을에 머물러서 거기에서 주는 좋은 것을 얻어먹고 쉬고 싶은데 ‘다른 고을도 찾아가자’고 하시니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 헌데 우리가 무엇이길래 머리 둘 곳을 찾는단 말입니까?
죄를 짓고 있는 사람에게는 죄 짓기를 그만두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죄를 짓는 것을 그만두고 교회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이에게는 의무적인 교회 생활을 그만두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의무적인 교회생활을 그만두고 열심히 살려는 이에게는 가난한 이를 보살피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가난한 이를 보살피는 이에게는 가난한 이를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가난한 이를 사랑하는 이에게는 부유한 이들마저도 끌어안는 마음의 품을 가지라 하여 회개를 이끌어내고…
우리가 어디에 안주하려고 하는 그 순간 예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여 우리를 더욱 ‘완전’하게 하려고 애쓰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방향지시를 받아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안주하고 싶은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 가자’고 하시니 말입니다. 이제 그만 한 고을에 머물러서 거기에서 주는 좋은 것을 얻어먹고 쉬고 싶은데 ‘다른 고을도 찾아가자’고 하시니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었습니다. 헌데 우리가 무엇이길래 머리 둘 곳을 찾는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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