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길 위에서 일을 합니다. 길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지를 알려주고 그 가는 길을 쉽게 만들어 주지요. 길이 없으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수풀을 헤치는 참으로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하지만 길이 있으면 그 여정이 많이 수월해집니다.
영혼에도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혼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이 길 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의 길을 따르지요.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한 사람이 술을 마십니다. 그리고 잔뜩 취해서 집에 돌아와 아내를 구타하고 또 다른 여자를 탐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영혼의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요구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육신의 욕구가 자신의 길이 되어버린 사람인 셈입니다.
사람들은 영혼의 요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찾지요. 하지만 전혀 엉뚱한 방법으로 구원을 찾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사제를 초대해서 축복받은 물을 끼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스스로의 삶을 바꾸어 나갈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중에 컵에 비를 받으려면 컵을 똑바로 받쳐 들고 비가 오는 곳에 서 있으면 됩니다. 다만 컵을 꺼꾸로 들거나, 무언가로 가로 막거나, 컵에 구멍이 나서 새지 않으면 됩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에게 비처럼 내려옵니다. 우리가 그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닌 다른 것을 쳐다보고 있거나, 아니면 죄와 오류로 그 마음을 가로 막거나 혹은 구멍을 내지 않으면 축복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우리는 영혼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진리이시요, 생명이시요 사랑이신 그 분이 바로 영혼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하느님에게 이를 수 있습니다.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 길은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사랑을 찾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서 쾌락을 찾곤 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서 쾌락이 소진되고 나면 다시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메는 것이지요. 사랑은 희생입니다. 서로를 헌신하고 고통을 참아 받을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랑을 가르쳐 주셨고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쪼록 여러분들도 그 길을 따라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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