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태 9,2)
중풍병자에게 절실한 것은 중풍을 고치는 것이라는 것이 통상적인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내면의 고통을 바라보았고 가장 아픈 그곳을 우선적으로 치유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적인 것만으로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어 나가는 사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면 이슈거리가 되는 것이지요. 생긴 것도 멀쩡하고 인기도 많은 사람이 훌쩍 떠나 버리니 우리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내면에 보다 더 많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돈으로는 사람의 진정한 마음을 살 수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돈으로 권력을 사서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사랑을 얻어내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내면을 보셨고 그의 가장 절실함을 보듬어 주셨습니다. 즉,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지요. 예수님은 육체적인 치유 없이도 이미 그에게 행복을 돌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 앞에서 증거가 필요했기에 예수님은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건강마저도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메시아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지요.
우리는 내면이 공허하기에 육체적인 쾌락을 쫓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적인 충만이 아니라 내적인 충만입니다. 그리고 그 내적 충만은 오직 진정한 구세주를 만날 때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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