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완제품을 구입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에 무언가를 정성을 들여 기른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치킨을 사먹지 달걀을 사서 키워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도 ‘손쉬운 방법’, 또는 ‘효율적인 방법’만을 찾습니다.
그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은 율법의 준수를 말합니다. 법적 규정의 준수를 말하지요. 최소한의 규정된 무언가를 하고 나머지는 내 멋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규정된 것 외에는 적어도 누군가의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법규가 인기가 있습니다. 판공을 지키는 법, 주일 미사를 늦게 와도 법적으로 허용되는 시기, 금육재를 어느 선까지 지켜야 하는 지 등등을 재고 따지고 해서 그 최소한의 규정을 이루고 나면 나머지 삶은 하느님에게서 벗어나 살고 싶어합니다.
한편 하느님의 나라는 씨앗으로 주어집니다. 완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길러야 하는 무엇인가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실망하고 중간에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사랑에 마음을 쏟고 인내를 기르고 믿음 안에서 걸어나가는 것보다는 그냥 별 생각없이 살고 내 육신의 욕구가 기대하는 것에만 신경쓰고 사는 것이 속편한 셈입니다. 책임있는 가장이 되는 것보다 무책임한 가장이 되는 것이 자기 스스로에게 편하고, 절제 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 무절제한 삶을 사는 것이 쾌락을 누리는 데에 더 나은 방법이기에 그것을 손쉽게 선택하는 셈입니다. 즉,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셈이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너질 때에 그들이 과연 무엇에 기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의지하던 집이 기초부터 무너지는 마당에 과연 그들이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소홀히 하고 온통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만을 추구해 온 그들이 과연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될까요?
하느님의 나라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적절히 주고, 비료와 양분을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가 성장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만큼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게 커 가는 나무가 되고, 또 우리가 힘을 들이는 만큼 튼튼한 기초를 가진 집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완제품은 세상 어딜 가더라도 팔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씨앗으로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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