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마태 7,23)
합법한 불법이 있고 불법한 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외적인 것으로 합법성을 따지곤 합니다. 그래서 흔히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고 반대로 죄 있는 자들을 용인하곤 하지요.
뉘우치는 죄인은 하느님의 손길 안에 있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음탕한 의인은 하느님에게서 벗어나 있습니다. 회개하는 죄인을 단죄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이는 그 못된 마음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집니다. 반대로 자신이 저지를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에게 돌아가려는 이는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마태 7,22)
마찬가지의 말을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 저희가 주일 미사에 나가고 때가 되면 단식을 하고, 교무금을 꼬박꼬박 내고 판공도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외적인 일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 모든 일을 어떤 목적으로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마지못해서 주일 미사에 의무감으로 참석을 하고, 그 어떤 뉘우치는 마음도 없이 기계적으로 성사를 보고, 교무금은 감사함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아까워 죽으려는 마음으로 내고, 단식을 다이어트를 위해서 하는 거라면 그러한 행위들은 가식이고 위선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유일한 합법은 ‘사랑’ 뿐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법을 일삼는 자들에 불과합니다. 억지로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시설에 가서 활동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안 식구들의 부족함을 인내로이 견디고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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