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집입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안락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장소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때로는 집이 집이 아닐 수도 있지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때로 ‘가출’이라는 것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 즉 예수님에게 집은 모든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 어떤 곳도 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진정으로 안락함을 누릴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느님 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 역시도 하느님 아닌 곳에서는 참된 안락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돌아가기 전까지는 온전한 안락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받고 온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저마다에게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사명이고 한 영혼이라도 더 하느님에게로 초대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이 세상에 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뿐입니다. 그러고나면 훗날 진정한 의미의 집을 얻게 됩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마태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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