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문제들을 대면하게 됩니다. 그런 문제들 가운데에는 아주 소소한 것, 이제 막 시작된 것이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주 심각하고 뿌리깊은, 오래 전부터 예비된 문제들도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이 우리 근처에서 일어나는 것은 달리 말하면 우리를 향한 일종의 메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올바로 읽어내어야 하고 올바로 대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문제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회개’에로의 초대가 됩니다. 즉, 내가 문제를 야기하는 주체라면 우리는 그 문제를 올바로 바라보고 우리의 뉘우침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내가 바뀔 때에 그 문제도 당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반대로 그 문제가 내 주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장’의 토대가 됩니다. 내가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내 주변에서 나에게 문제가 다가온다면 그것은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 문제를 감싸 안아야 하고 우리의 십자가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니다. 실제로는 나 자신에게서 시작된 문제인데 그것이 한 대상을 거쳐 오면서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문제처럼 내비쳐진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 남자가 외도를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당연히 그 남자를 비난하고 화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아내는 남편의 그 외도가 실제로 자기 자신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남자의 순수한 악한 의도가 외도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내로서의 허영과 교만과 불충실이 남편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고 그 남편이 다른 애정에 허덕이게 만들어서 결국 유혹에 빠져들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는 남의 탓을 하는 데에는 전문가들이지만 우리 자신의 오류를 바라보는 데에는 참으로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내 주변의 모든 문제는 대부분이 나 자신의 부족함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일하는 본당에서의 문제들은 바로 주임 사제인 나 자신의 부족함에서 기인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다 자기 탓을 하면서 스스로 비참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인식과 식별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기심으로 인해서 행여 나의 문제를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에 덮어 씌우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야 하고, 지혜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올바로 아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겸손한 자로 나서고 그분의 지혜의 선물을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나 자신을 올바로 보게 되고 주변 환경에도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빛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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