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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묻은 먼지마저도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루카 10,11)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어찌보면 참으로 냉혹하기까지 합니다. 제자들은 발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버리고 그 고을을 빠져 나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냉혹한 것은 제자들이 아니라 바로 그 고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들은 ‘선’을 수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제자들이 올바른 복음 선포를 했다는 가정 하에서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속된 말로 조리돌림 당하는 이유는 교회 자체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오류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비단 오늘날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서 성역이 없어지면서 모든 일이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더욱 극심해 보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자신의 일을 올바로 수행하는데도 사람들이 교회를 거부하는 곳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결과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러 차례의 시도의 결과로 주님의 제자는 그곳을 빠져나오면서 발에 묻은 먼지까지도 가지고 나와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그 지역 사람들의 선의를 수용해서 생활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복음 선포자도 무언가를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며 어딘가에 숙소를 정하고 생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일마저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분란이 너무나 심하고 서로 갈라져서 싸우는 통에 복음 선포자는 그 곳을 빠져 나와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때에 그 공동체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우에 복음 선포자는 그 동네에서 묻은 먼지까지 털면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합당한 경고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의 마지막 목적은 결코 심판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 한 명이라도 더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의 선포가 최종 목적인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생활 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모든 분쟁과 다툼은 세속적 욕망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바라는 것이 없을 때에 우리는 다른 이와 다툴 이유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 메세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드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분쟁을 일으킬 것이고 나아가 하느님의 자녀들인 교회를 자신들의 생활 환경에서 쫓아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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