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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과 의심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 10,16)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마태 28,17)

함께 좋은 길을 가자는데 왜 거절할까요? 빛을 향해 나아가자는데 왜 그것을 거부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좋은 것’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며 빛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행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행실에 따라서 내면에 형성된 것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서 기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이는 거짓에 익숙해지고 거짓스런 삶에 익숙해져서 진리를 거부하게 됩니다. 집에 돈이 많다고 속여온 사람은 그 삶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그 거짓이 무너질 때에 자신이 당할 수치가 엄청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는 진리를 품고 있는 사람, 즉, 자신의 거짓됨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피하려고 하고 그에 대해서 두려움을 품게 됩니다.

탐욕에 물든 사람은 영원한 진리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진리에 다가설수록 자신이 지닌 탐욕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진리에 다가올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탐욕스런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내려 놓도록 종용하는 진리를 피해 도망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 복음에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저마다의 행실대로 그것을 열심히 따를수도, 혹은 따르려고 노력할수도, 아니면 정반대로 그것에 거부감을 느낄수도, 또는 적극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복음의 원수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배불리는 것 외에는 모두 피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서로 영원한 친구가 없으며 일시적인 동맹을 형성할 뿐, 조금이라도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이가 있으면 그 즉시 그와의 친교를 깨어 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럴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 그런 것을 느끼는 이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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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문제

고해소 안에서 마주하는 거의 모든 문제는 ‘관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만큼 관계가 소중하고 그 관계에서 문제가 일어난다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이게 어떤 물건이라면 절대로 그 물건과의 관계를 가지고 오지는 않습니다. 물건은 필요할 때에는 쓰다가 필요가 없으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인간관계는 특히나 가족관계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관계가 문제가 됩니다.

일방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관계는 모두 상호적인 것입니다. 부모와도 배우자와도 자녀와도 친구와도 모두 상호적인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이게 내가 잘한다고 무조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상대가 잘한다고 그대로 잘 되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관계는 상호적으로 신경써야 하고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계약’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 사이에 계약을 끼워두고 그 계약이 지켜지는 동안에는 관계가 유지되다가 계약이 깨어지고 나면 관계가 파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들이 근간으로 삼는 계약관계는 이해관계에서 시작되고 그 이해관계를 가늠하는 핵심은 바로 나 자신의 이익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유익한가 아닌가, 나에게 필요한가 아닌가가 핵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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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진보의 도식

선한 사람이 늘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요. 선하니까 그 선한 성정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선하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느님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이지 무턱대고 모든 것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바르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선한 사람은 기본 성정이 선하긴 하지만 모든 것을 수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것을 수용하지만 아닌 것에는 과감하게 아니라고도 표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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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화 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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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저지르지만 뉘우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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