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루카 12,21)
우리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감을 올바로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성으로 교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천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받아들인 것을 ‘실제’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것을 이루어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앞에 함정을 파 놓고 교묘히 덮어서 그것을 보이지 않게 해 두었을 때에 내 친구가 나서서 그리로 가지 말라고, 거기에는 함정이 있다고 한다면 비록 나는 지금 당장 나의 지각으로는 그 함정을 볼 수 없지만 나의 친구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함정을 피해 다른 길로 걸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세례를 받고 미사에도 나오지만 여전히 하느님에 대해서 올바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분에게 인색한 이들이 되는 것이지요.
다른 이유로는 사랑의 크기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분을 올바로 사랑하지는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너무 커서 거기에 온 힘을 쏟고 나면 하느님에게 돌려드릴 사랑이 부족해지는 것이지요.
어떻게든 최종적인 결과물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자신을 사랑해서 재화를 온통 스스로를 위해서 모으든, 아니면 정말 하느님을 사랑해서 하느님을 위해서 재화를 모으든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감내해야 합니다.
투자한 것에 따르는 결과물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장님이라 우리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이 어떤 결과물을 얻게 되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것을 그만 생각을 멈춰 버리고 맙니다. 결국 망해버리고 말 것이 분명한 회사에 투자를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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