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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



너 사람의 아들아, 네 동포 가운데 제 마음대로 예언하는 여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을 거슬러 예언하여라. (예레 13,17)

특정 신심에 몸담은 여성들 가운데 소위 신비한 언어에 대한 해석과 예언을 한답시고 나서는 이들이 있습니다.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은 언뜻 달콤하지만 결국 그런 말들을 통해서 그들이 노리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대로 예언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예언하는 이였다면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온갖 허언과 잡스런 호기심거리들을 퍼뜨리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싶을 때에 예언을 하는 척 하는 이들입니다.

그런 여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끼리끼리 모이는 법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에 의미를 두고 장차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스스로 믿으며 그들에게 더욱 믿음을 줍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도 그런 헛된 일에 끌어들이곤 합니다.

그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허영과 교만입니다. 그들은 언뜻 권위에 순종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에 반하는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즉, 자신의 행동에 특정한 제한을 받거나 하면 죽기 살기로 반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분별할 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성당 안에서만 거룩한 척을 하고 실제 생활은 무질서하고 남편과 자녀들을 내팽개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둠의 일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에서는 쉬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생에 대한 찬사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듣는 사람은 그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외모는 번지르르 하며 그들의 행동거지는 내세울 수 있는 행동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반면 그들은 인내가 없고 겸손이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들의 혀가 얼마나 날랜지 듣는 이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힘든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며 가장 거룩한 이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징표들로 그들을 분별할 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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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을 향한 악마의 공격에 대한 소고

사제들을 향한 악마의 공격에 대한 소고

먼저 사제들의 위치를 잘 알아야 한다.
사제들이 하는 일은, 사람들을 '성화(聖化)'
즉,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 가까이로 가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악마들로서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거룩한' 사제들은 손짓 한 번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이 축복 받았다고 느끼게끔 한다.
축복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제가 마음을 담아 전하는 강복의 위력은 한 사람의 하루를 밝힐 수 있다.
그 밖에도 사제가 거행하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는
그 사효성(일어나는 일 만으로 이루어지는 효력) 자체 만으로 위대한 힘을 지닌다.
그렇기에 사제들은 보통 사람들의 배에 해당하는 악마들의 유혹의 대상이 된다.

악마가 할 최선의 작업은,
그 사제직의 성스러움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악마들이 하는 짓은
사람들이 그 사제의 인간됨을 보고
코웃음을 치게끔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결국 그의 모든 사제직의 직무수행마저도
사람들에게 "무의미"하게 보이도록 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그래서 그가 가진 인간적 약점을 최우선의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욕구'가 될 수도 있고,
'재물에 대한 탐욕'이 될 수도 있으며,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마음'이 될 수도 있다.

누구는 이성을 돌처럼 바라보고 돈을 하찮게 여기지만,
다른 한편으로 은근히 명예욕과 지배하려는 마음이 대단할 수 있으며,
누구는 돈이나 명예, 권력에는 아무 관심이 없지만 이성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누구는 '나은 생활', '윤택함'에 관심을 갖고 재물의 종이 되어간다.

사제직은 '나약한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으로서
우리는 그 인간이 아니라 그가 지닌 사제직을 존경할 필요가 있다.

악마의 목적은 그 '인간의 나약성'을 교묘하게 유혹해서 끝까지 드러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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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하느님을 알기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싶어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요. 뭔가 위대하고 거대한 분이 우리를 만드신 것 같은데 그런 분에 대해서 제대로 안다면 생을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분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고 외쳐대는 종교가 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상황 자체에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 자체로 알기 힘든 분이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 자체 안에 그분에 대해서 알기 힘든 어떤 모종의 시스템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요?

첫번째 의문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체가 알기 힘든 분이 아닌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일단 하느님은 ‘무한’한 분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시니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우리가 그분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분을 아예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당신과 닮은 속성이 있어서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분에 대해서 알아 나가고 배워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그분을 아는 것은 가능하다’ 정도로 전제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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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면담의 구체적인 환경

영적 면담이라는 것은 일단은 서로 맞대면을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간이 의사를 전달하는 데에는 오직 ‘언어’만이 그 수단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표정과 따스한 환대 등등 여러가지 면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상담을 하는 경우에는 많은 다른 인격적 부분들이 결여되기 때문에 면담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치달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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