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시작되었으나 완료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하늘나라에 아직 참여하지도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일단 시작만 되면 성장하게 될 하늘나라이지만 그 시작을 이루지 못한 채로 스스로는 나름 괜찮은 신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늘나라에 참여했다는 것을 외적인 종교 예식으로 국한할 수 없다. 하늘나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좀 더 내밀한 영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다. 사랑을 배운다고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겠노라고 결심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다가설 때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신앙이 우리에게 전하는 씨앗들은 바로 이러한 것들로서 씨앗에 대한 정보를 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씨앗을 가진 게 아니다. 씨앗은 두 손으로 받아야 하고 밭에 심어져야 하며 그에 합당한 양분이 공급되어야 한다.
성당에 다닌다면서 선하지 않은 이들, 여전히 세속적인 욕구가 내면에 가득하면서도 자신은 본당에서 중요 직분을 맡고 있으니 훌륭한 신자라고 착각하는 이들은 훗날 하느님 나라의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을 것이다.
하느님이 흐리멍덩한 분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정의를 만드신 분이 ‘정의’를 무시하실 리가 없다. 다만 그 정의가 우리의 짧은 생애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희망’을 지닌 이들은 이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것이다. 즉, 억눌려 있던 이의 권위를 세우시고 교만한 자들을 내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단 하나의 것은 바로 겸손한 마음 뿐이다. 하느님 앞에서 낮춰진 마음 뿐이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로마 8,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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