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로마 5,20)
그래서 죄인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죄가 많다고 해서 구원의 기회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죄가 극심한 만큼 우리의 주님은 그 극심한 죄악으로 다가오셨습니다. 당신의 구원의 손길을 더 넓게 더 깊숙이 펼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죄인도, 그 어떤 극악무도한 죄인도 주님의 구원의 손길에서 멀어져 있었노라고 자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의 용서가 풍부히 내렸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사람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스스로를 포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심판해 버린 것입니다. 나 같은 존재는 하느님의 용서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버렸고 몇 번 돌이키려고 시도하다가 성에 차지 않자 포기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결코 포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날숨이 작용하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순간까지 하느님은 당신의 한량업는 자비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잠깐,
하느님의 무한과 인간의 유한을 뒤섞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분이시고 그분의 자비와 사랑은 끝이 없지만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든 최선의 방법을 찾아서 길을 벗어난 사람을 돌이키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하느님의 무한성이 내 안에서 작용을 하고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과신을 해서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무리하게 시도하곤 합니다.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서 분별없이 수용하다가 결국 공동체를 망가뜨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모쪼록 하느님의 선하신 자비가 모든 죄인들에게 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능력이 주어진다면 마땅히 우리도 그 일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과신은 도리어 일을 망친다는 것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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