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분개하여 군중에게 말하였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 (루카 13,14)
우리가 걱정하는 대상에 따라서 우리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적지 않은 경우에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과 속박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안위’입니다.
본당에서 발언이 대체로 강하고 말이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진정으로 참된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을 찾아보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이들은 자신이 속한다고 믿는 대상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나의 생활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걱정을 하고 뭔가 바꾸어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지요. 그래서 입장이 뒤바뀌어 반대로 내가 주장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이권을 도로 까먹는 일이라면 입을 다물어버릴 거짓 예언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는 통에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은 목소리 한 번 내지도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원하는 것은 성당에 이런 저런 제약 없이 나아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거룩한 성사에 참여하는 것인데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우를 종종 관찰할 수 있습니다. 행사 날짜를 중순으로 잡아야 하는지, 후반으로 잡아야 하는지를 두고 한참을 다투다 보면 정작 가난한 이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이들의 의사는 전혀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 버리고 말지요.
예수님은 아무 주저없이 열여덟 해를 고생한 여인의 허리를 고쳐 주십니다. 하지만 이것이 회당장에게는 크나큰 스캔들이었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고수하고 외쳐온 안식일 준수의 율법에 상당히 어긋나 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날이라는 핵심이었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 율법의 핵심에 가장 합당한 일을 실천한 것 뿐입니다.
과연 우리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펴는 데에 마음을 쏟고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제단에 금박을 씌우느냐 마느냐로 고심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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