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루카 11,38)
우리가 흔히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고정관념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지요. 그것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행위를 하는 일은 허다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감사가 없는 미사가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미사라는 것이 파스카의 축제이고 십자가 구원 사건의 기념일진대 우리에게는 기쁨도 감사도 없는 의무적인 외적 행위의 미사만 남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사제인 저에게 신앙의 여러 외적 행위들에 대해서 묻습니다. 금육은 몇 살 부터 지켜야 하는지, 미사 전 공복재는 몇 시간 전부터 지켜야 하는지 등등이지요. 하지만 금육을 한다면서 보다 값비싼 회를 사다먹고 공복재를 지킨답시고 위만 비울 줄 알았지 정신은 온통 흐트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여전히 세상에는 바리사이들이 존재하고 그 바리사이들은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나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눈길은 사랑의 눈길이 아니라 심판의 눈길입니다. 행여라도 뭐가 하나 틀리는 게 있으면 그걸 두고 심각하게 비판하려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의로음과 학식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즉 바리사이는 예수님보다 위에 머무르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바리사이는 수치를 당하고 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분명히 인지하고 계셨으니까요. 물론 하느님의 말씀이시고 지혜 그 자체이신 분이 그걸 모르실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깔보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루카 13,39-41)
그들이 들은 말은 ‘어리석은 자들아’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적 지식으로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사랑에는 너무나도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오늘날의 세상에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