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라고 우리가 부르는 기도의 '명칭'은 우리 구세주이신 주님이 우리에게 선물하신 기도라는 엄청난 존경심 속에서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기도는 "우리 아버지"라는 지극히 친숙한 명칭으로 시작됩니다. 따라서 이 기도는 그렇게 엄숙하고 진중한 무엇이기보다 아버지에게 청하는 소박한 한 아들의 바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의 깊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동양적인 문화의 바탕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윗분에 대한 지나친 경외보다는 조금 마음을 가볍게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극히 위대한 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아버지는 분명히 다릅니다. 범접할 수 없고 지극히 높은 곳에 있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분에 대한 마음과 한 집에서 지내면서 늘 우리를 보살피시고 때로는 우리가 엄살을 피우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못할 때에는 우리를 꾸짖어주시는 아버지에 대해서 갖는 마음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 모시는 분에 대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늘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도 '용서'에 관해서 만큼은 지나치리만큼 엄하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계시니,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이웃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 용서받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용서의 열쇠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에 대해서는 익히 배운 바가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유심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12,31-32)
한 마디로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아무것도 없으나 다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 즉 나와 상대 안에 있는, 또는 있을 지도 모르는 성령의 활동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람과도 같이 불어와서 어디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며 어떻게 작동하는 지도 모를 그 성령의 활동을 우리는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되고 마지막까지 나 자신과 그에게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또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 6,14-15)
지극히 위대한 신과 일상을 공유하는 아버지는 분명히 다릅니다. 범접할 수 없고 지극히 높은 곳에 있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분에 대한 마음과 한 집에서 지내면서 늘 우리를 보살피시고 때로는 우리가 엄살을 피우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못할 때에는 우리를 꾸짖어주시는 아버지에 대해서 갖는 마음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 모시는 분에 대해서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늘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도 '용서'에 관해서 만큼은 지나치리만큼 엄하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계시니,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이웃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 용서받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용서의 열쇠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가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에 대해서는 익히 배운 바가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유심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어떠한 죄를 짓든,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을 하든 다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마태 12,31-32)
한 마디로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아무것도 없으나 다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 즉 나와 상대 안에 있는, 또는 있을 지도 모르는 성령의 활동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람과도 같이 불어와서 어디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며 어떻게 작동하는 지도 모를 그 성령의 활동을 우리는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되고 마지막까지 나 자신과 그에게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또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 6,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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