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올까?
무슨 거창한 소리를 할려고…ㅎㅎ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교회 혼인을 꿈꾸던 이,
정말 아름다운 신학교 생활을 꿈꾸던 이,
하지만
때로는 단 한 번의 실수는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한다.
그 한 번의 그릇된 결정이 그 사람이 그렇게 꿈꾸던 것을 앗아가 버린다.
그러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정말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어떻게든 교회에서 혼인 무효화 소송을 통해서라도 혼인의 은총상태를 회복하려는 이들을 보았고,
다른 수도회나 다른 교구를 통해서라도 다시 사제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을 보았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어쩌면 전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우리가 꿈꾸던 것인가?
그것은 교회의 축복인가 하느님의 축복인가?
하느님의 축복은 정도를 벗어난 이에게는 절대로 내리지 않는 것인가?
과연 '정도', 바른 길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 정도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면
우리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되살펴보게 된다.
내 인생은 정도, 바른 길인가?
과연 '정도'라는 것은 있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마더 데레사의 길을 걸어야 하고,
산 프란치스코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인가?
여기서 살짝 정반대의 방향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정방향이 애매한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그릇된 방향은 없는가?
엇나가는 이들은 없는가?
있다.
하지만 그 구분을 누가 해 내는가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과연 인간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바오로 사도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이러 가던 그 때에 올바른 일을 한다, 자신은 정도를 걷는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을 반기지 않던 마을에 불을 내리자던 제자들도 제 딴에는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소식을 듣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던 베드로도 딴에는 옳은 일을 한답시고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의 경우, 물론 그 밖에도 복음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다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경우에도
그들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들은 '사랑'이 뭔지 몰랐다.
그들은 '십자가의 사랑'이 뭔지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왜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누군가 죽어야 하는건지
왜 날 죽이려는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빼앗긴 것인가?
과연 우리는 그것을 빼앗긴 것인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아니… 어쩌면 봄은 빼앗긴 이들의 마음에 먼저 올지도 모르고
들을 빼앗았다고 생각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교회의 혼배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교회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더 사랑하기 위해 교회혼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신부가 된다는 목적에 목매고 살아남기 위해서 신학교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 더 나아가기 위해서 신학교에 가는 것있음…
보다 근본적인 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는 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걸 모르기에 잃지도 않은 것을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고,
사회에 '낙인 찍힌 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훗날 일어나게 될 일에 모두 놀랄 것이니,
그 낙인을 찍어대던 이들이 가장 낮은 자리에 머물게 되고
낙인 찍힌 이들이 오히려 하느님 더 가까이 미소짓는 얼굴로 머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법이다.
여전히 교회 안에는 '심판자'들이 많으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예수님의 목소리는
죄인들을 향한 심판자들의 지탄의 목소리에 쉽사리 묻혀 버리고 만다.
노력은 중요치 않고 오직 결과만이 평가받는 시대일 뿐이다.
장애인이 아무리 노력해서 계단 하나를 올라가 본들
한 달음에 10계단을 올라간 정상인만이 조명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니,
하느님께서는 그 장애인의 가상한 노력을 잊지 않으신다.
그리고 원래부터 10계단을 오를 수 있었고 능력을 키웠더라면 15계단은 거뜬히 오를 수 있었던 그 정상인은
하느님으로부터 도리어 추궁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시선이라는 것은 이렇게 피상적이고 얕은 법이다.
진정한 분별은 오직 하느님만이 '완전하게' 하신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라고,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라고 이 세상에 파견을 받았는데
심판의 잣대를 휘두르느라 정신이 빠져 있으니 이를 어쩌리요.
100마리의 미꾸라지에서 약한 것 10마리를 제하고 나면 나머지 90마리에서 다시 약한 것 9마리가 나오는 법이거늘…
나머지 90마리들이 약한 것 10마리를 도와서 저 밖에 있는 나가 떨어진 것 200마리를 추스려야 할 판에
우리는 자꾸 우리 가운데 있는 100마리 중에서 약한 것들을 골라낼 궁리만 하고 있다.
자기 몸뚱아리가 살짝 아프면 그렇게 병원을 찾아 다니면서
제 공동체의 아픈 이는 잘라 내려고만 하니
이게 일이 될리가 없지…
이제 현 교황님께서 곧 있으면 물러나시게 된다.
곧 새로 선출되실 다음 교황님은 참으로 마음이 많이 아파 보셨던 분이시길 바란다.
그래서 사제들이 많은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많은 좋은 결정들을 시대 상황에 맞추어 내려 주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명'의 덕은 여전히 빛을 발하니
각 시대는 그 상황에 적합한 인물을 맞이하는 법이다.
하느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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